그날도 신나게 마트에 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 그 마트!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 왼쪽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가 나타난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차는 나를 앞지르더니 내 앞에 우당탕 안착했다. 추월이야 흔한 일이지만 상황 파악이 쉽사리 안 된 이유는 내가 1차선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에 나올 교차로에서 좌회전할 예정이었다.
애써 추월한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음 신호에 만났다. 그 차는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빨간 신호에 정지해 있는 그 차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기분이 상해 바짝 붙지는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고속도로도 아니고 동네에서, 다음 신호에 이렇게 만날 것을 굳이 그렇게 나를 추월해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신호에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고, 멀어져 가는 그 차를 보며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띄운 채 장을 보고 집에 왔다.
집에서 블랙박스를 돌려 보니 그 차는 내 뒤에 있다가 나를 추월하려고 역주행했다. 너무 느리게 가서 답답해서 그랬으려나. 하지만 그 길은 초등학교 앞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옆의 차도 어린이보호구역 제한 속도인 30에 맞춰 천천히 가고 있었다. 2차선에 있던 다른 차 역시 나란히 서행하고 있으니 역주행을 감행하면서까지 나를 앞지른 것이다.
내가 초보여서 그랬을까. 지금 추월하지 않으면 초보운전자의 뒤를 계속 따라가야 하니 말이다. 그 이유라면 그래, 납득할 수 있다. 아무래도 초보운전자가 앞에 있으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운전이 미숙하고 경험이 적으니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고, 도로 흐름에 매끄럽게 합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초보운전자는 자기 페이스대로 가도록 두고, 본인이 그 차를 앞질러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앞에서 내가 거슬렸을 텐데도 압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추월해주는 차들이 무척 고마웠다. 차선을 넘나드는 스무스한 움직임을 보며 “캬!” 하는 감탄사를 곁들이기도 한다. 도로에서 초보를 만나면 멀찍이 떨어져 가고, 앞에 가는 초보운전자가 당황할까 봐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봤다. 세심한 배려다.
돌아보면 나 역시 운전하며 여러 도움을 받았다. 마트 가는 길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는데 저 멀리에서 도로 한 차선을 막고 공사 중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앞에 가던 차들이 어느샌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왜 내가 맨 앞이지 이상하다, 하며 가는데 공사 중이라는 안내판을 바로 코앞에 당도해서야 발견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공사 중인 차선을 벗어난 뒤였다. 아! 이래서 운전할 때 멀리 보라는 거였구나 깨달았다. 앞차만 보고 따라가던 나는 도로에 우뚝 서버렸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상태에서 옆 차선으로 끼려고 했지만 직진 신호가 떨어진 뒤라 차들이 쌩쌩 달려 엄두가 안 났다. 모두 지나간 뒤에 가야지 하고 기다렸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까만색 카니발 한 대가 빵빵댔다. 내가 또 무얼 잘못했지 싶어서 쳐다보니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어서 끼라며 손짓했다. 나는 어어, 하다가 꿈틀대며 옆 차선으로 옮겼고 감사의 의미로 비상등을 길~게, 아주 길~~게(느낌상 5분은 켠 것 같다) 켰다. 뒤차는 내가 비상등을 켠 사실을 잊은 게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칠 수 있음에도 도로 위 외딴섬처럼 홀로 있는 초보운전자를 위해 창문을 내리고, 내가 불쾌하지 않게끔 부드럽게 손목을 움직여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차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가는 게 누가 봐도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주고, 친절을 베풀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초보운전자를 위해서 말이다. 친절에 드는 수고로움을 알기에 그 뒤로 나는 까만색 카니발을 보면 그가 누구든 간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차를 몰고 다니며 새삼 느낀 건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운전하면 성격 버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도로 위 상황이 마냥 평화롭진 않다. 그 때문에 간혹 불쾌한 일을 겪지만 그럴 때면 지금껏 내가 알게 모르게 받은 많은 배려를 생각한다. 여태 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베푼 배려와 친절 덕분이다.
제목 사진: Unsplash의 Nicolas Pey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