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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Jan 19. 2024

운전을 책으로 배운 사람

운전에 앞서 두 시간씩 다섯 번, 열 시간의 연수를 받았다. 면허를 딴 지는 어언 7년이 지나서 시동 켜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브레이크를 밟고, 사이드브레이크 내리고 등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반복했다. 부끄럽게도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가 헷갈려서 시작부터 애를 먹었다.      


“선생님, 왼쪽이 브레이크인가요? 아니면 오른쪽인가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발을 아래에 두고 급히 선생님께 물었다. 면허만 따놓고 그 뒤로 운전을 한 번도 안 했더니 머릿속은 백지였다. 살포시 째려보는 듯했던 선생님의 눈길을 기억한다. 그 질문 하나에 내 상태를 파악한 것인지 선생님은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긴장과 부담감 속에 열 시간의 연수가 끝났다. 마지막 날에는 처음보다 몸에 힘이 덜 들어가고 주위도 조금씩 살필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잠실은 차로 20분 내외였는데 선생님은 “당장 잠실 가도 되겠네”라는 칭찬을 하셨다. 물론 내비게이션 보는 법을 익히고, 차선 변경은 급하게 하지 말고, 신호를 잘 보고 등등 여러 단서가 달렸지만.


매일 조금이라도 차를 타고 나가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기에 남편을 태우고 나갔다.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덜컹거리는 내 운전과 남편의 폭풍 한숨으로 냉랭한 기운만 가득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돈 내고 하는 연수는 이미 받았고, 남편에게 배우자니 운전 때문에 앙숙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인가.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다행히 정보를 얻을 곳이 꽤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책, 유튜브, 초보운전 카페를 활용했다. 뭐든지 책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이라서 초보운전자를 위한 책부터 주문했다. 운전을 어떻게 책으로 배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활자로 정리된 쪽이 편했다. 춤도 종이에 적어가며 외우는 사람이라 그럴까. 책에는 내가 궁금해하는 정보들이 있었다. 나온 지 10년 가까이 돼서 지금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같았다.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다른 차들과의 거리 가늠하기, 고속도로 진출입 시 유의사항, 주차 등 초보에게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줌바 발표회를 준비하며 정리했다.

  

책과 더불어 유튜브와 인터넷 카페도 활용했다. 운전을 가르쳐주는 채널이 많아서 그중 몇 개를 선택했다. 나처럼 운전을 시작하는 사람이 연수받는 내용도 있고, 선생님이 직접 운전하며 알려주는 영상도 있었다. 주행 중 자연스럽게 끼어들기, 주차법 등을 주로 봤다. 초보운전 카페도 가입했다. 모두 같은 처지라 그런지 서로 응원하는 글이 많았다. 초보운전 카페에서는 운전 정보와 더불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지의식을 느끼고, 따뜻한 위안을 받았다.     


책과 유튜브, 카페와 더불어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은 물건이 있다. 남편의 지인이 물려준 앙증맞은 자동차다. 아이는 이 빨간 자동차에 푹 빠져버렸다. 어린이집 등하원은 물론 놀이터, 동네 산책에도 매일 이 자동차와 함께했다. 아이를 태우고 조작하는 건 내 몫이었는데 앞바퀴만 회전하고, 뒷바퀴는 각도가 고정인 것이 자동차와 같았다.


손잡이를 돌리면 앞바퀴가 따라 움직인다.


집에서 아이의 장난감으로 주차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뒷바퀴는 회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고 내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남편은 “실제 자동차는 그렇게 되지 않아”라며 내가 힘으로 움직여 놓은 장난감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놨다. 바퀴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쪼끄만 장난감이다 보니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다. 반면 이 빨간 자동차는 크기가 커서 손잡이를 돌리면 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보였다. 특히 후진할 때 핸들을 어느 방향으로 돌릴지 몰라 틈만 나면 물고기처럼 이쪽저쪽으로 퍼덕였는데 그게 많이 나아졌다. 왼쪽으로 후진하면서 들어가고 싶으면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되는 거였다!


이 모든 정보를 조합해 나는 매일 마트로 출근했다. 남편은 똑같은 곳만 가면 어떡하냐며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길은 똑같아도 도로 상황은 매일 달랐다. 어느 날은 한 차선을 막고 공사하기도 하고, 신호등 맨앞에 내가 서는 날도 있었다(초보에게는 그것도 큰일이다. 뒤차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라니! 아무도 부여한 적 없는 그 책임에 내 어깨는 한껏 경직됐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100퍼센트였다면 시간이 갈수록 두려움 70, 설렘 30으로 지분이 바뀌었다. 잠실은 못 갔지만 하루에 잠깐이라도 나간 덕분이었다. 이제 다음 날 운전 걱정에 밤새 잠 못 이루던 날은 지나갔다. ‘왕왕왕 초보’에서 ‘왕’ 하나는 떼도 될 것 같다. 이제 나는 ‘왕왕 초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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