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치 Jan 05. 2024

서른 일곱에 시작한 운전

첫 차 구매는 신중하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몇 달간 중고차 사이트를 보며 "운전 시작해야 하는데" "더는 미룰 수 없는데" 한탄만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근처의 중고차 매장을 검색해 오늘 바로 가자고 했다. “필요하긴 한데 차를 당장 살 건 아니야”라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경이라도 하자며 등을 떠밀었다. 결국 그날 처음 들어간 매장에서 덜컥 차를 샀다.

      

중고차 사이트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내가 정해 놓은 모델은 풀옵션 경차였다. 남편은 어차피 초보라 여기저기 긁을 텐데 풀옵션까지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내 대답은 단호했다. 운전을 잘하지 못하니 후방 카메라는 필수요, 차선이탈경보도 있으면 좋겠고, 장 보고 올 때 짐이 무거우니 스마트키도 필요하다. 다만 나도 양심이 있으니 선루프는 양보하겠노라 선언했다. 결국 1년 반 뒤 차를 팔 때까지 장착된 옵션을 다 쓰지도 못한, ‘왕초보’인 내게는 과분한 풀옵션 차를 갖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는 운전을 안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아이 소아과도 걸어갈 수 있고, 집 앞에는 큰 슈퍼가 있었다. 대중교통이 촘촘하고, 택시도 많았다. 차 타고 나갈 일이 있으면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갔다. 운전이 간절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 회사로 이직 전 따 놓은 면허를 7년 동안 묵혀두었다.

     

그러다 남편의 사무실과 가까운 경기도 하남으로 이사 왔다. 개발이 한창인 신도시여서 버스 노선이 한 개, 두 개였고 그마저 배차 간격이 짧으면 40분, 길면 1시간 반이었다. 근처에 변변한 슈퍼도 없었기에 마트에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마트조차도 매번 남편에게 의지해 가야 하는 건 사람을 위축되게 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6개월 동안 외면하던 여러 불편함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엉겁결에 산,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작은 차로 나는 우리 동네를 신나게 다녔다. 세탁 세제, 생수, 주스 등 들고 오기 무거워서 사기를 꺼리던 액체류도 망설이지 않고 사서 자랑스레 트렁크에 싣고 왔다. 차는 작아도 주로 혼자 타고 다녔으므로 수납이 부족하지 않았다. 아이 장난감을 사러 옆 동네로 당근 구매를 하러 가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도 보냈다. 나는 신도시의 총아가 되었다.


당근 거래로 산 아이 장난감들

      

당시 세 살이던 아이는 아빠가 운전하는 것만 보다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는 놀란 눈치였다. 항상 자기와 함께 뒷자리에 있던 엄마가 운전석에 앉는 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도 운전할 수 있어. 이제 엄마 차 타고 마트 가는 거야.” 비록 10분, 15분의 짧은 거리였지만 아이를 태울 수 있어서 기뻤다. 아이가 안 탈 때도 뒷자리에 장착된 카시트를 보면 마음이 든든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도 내가 운전해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남편은 본인의 기대와 달리 나의 운전으로 크게 덕을 보진 못했다. 혹시나 술을 마셔서 운전을 못 하게 되면 내가 데리러 가겠노라 호언장담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첫째, 남편은 술 약속 자체가 거의 없다. 기회를 주지 않는 양반이다. 둘째, 초저녁에 잠드는 아이가 있어 저녁에 나갈 수 없다. 잠든 아이를 깨워서 차에 태워 갈 만큼 급박한 상황은 없었다. 그래도 남편의 서울 사무실에 세 번 정도는 운전해서 간 것 같다. 너무 드문드문 가다 보니 입구가 헷갈려서 남편이 항상 큰길까지 나왔다. 3년 전, 강동대로를 비실대며 달리는 하얀색 경차를 봤다면 아마 나였을 것이다.

      

서울에 계속 있었다면 운전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신도시로 이사를 오는 등 여러 계기가 생겨 차를 사고 운전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늘고,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운전하게 된 뒤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직장 생활도 해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고 있지만 내가 못 하는 단 하나는 바로 ‘운전’이었다. 이 좋은 걸 이때야 하다니 한탄스럽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나 자신을 격려한다.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콤플렉스가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