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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Nov 03. 2021

2021년의 불로소득

1.


잠실에 갈 일이 있었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가판대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줄인가 했는데 로또를 사려는 행렬이었다. 십 년 전인가 재미로 로또를 사본 적이 있다. 사인펜으로 omr 용지에 내가 선택한 숫자에 색을 칠해서 냈다. 그 뒤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꽝'이었던 것 같다. 사은품이든 뭐든 행운으로 당첨되는 건 원체 운이 없어서 그 한 번을 끝으로 복권은 넘보지 않았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저녁 시간이었다. 아까 그 긴 줄은 어디 가고 로또 가판대 앞에 아무도 없었다. 영업이 끝난 건가 해서 봤더니 주인이 앉아 있었다. 기다려야 되는 것도 아니니 한 번 해볼까 싶어서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나에 얼마예요?

"천 원이요."

"두 개 주세요."


이천 원을 내니 주인이 작은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게 끝이에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펜으로 색칠하던 예전 방식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기계가 숫자를 알아서 골라주었다. 오호, 편리하네. 마침 다음 날이 추첨일이었다. 이게 뭐라고 떨리는지 목욕재계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로또 추첨 방송을 켰다. 숫자가 하나, 둘, 셋 맞더니 운 좋게 오천 원짜리에 당첨되었다.


이천 원을 투자해서 오천 원이 되었으니 삼천 원을 벌었다(하지만 동네에 복권 가게가 없어서 오천 원을 타기 위해 옆 동네까지 가야 했다).



2.


비트코인이 한창이던 때, 나도 그 열풍에 뛰어들었다. 얼마간의 여유자금이 생겨서 적금으로 묶어 놓을까 고민하던 차에 주변에서 하도 비트코인, 비트코인 하길래 궁금해서 해봤다.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좋았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냥 묵혀둔다고 생각하고, 오래 내다보고 투자한다 등등. 평생 투자는커녕 주식도 안 해본 내가 코인이라니!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차라리 주식을 하지 처음부터 투기를 하냐며 나를 무슨 투기꾼 보듯 했다. 아울러 너 큰일 날 애구나, 라고도 했다(코인에 매우 부정적인 사람).


혼자 조용히  , 괜히 얘기했구만 싶었다. 하지만  입으로 말하지 아도 남편은  눈치챘을 것이다.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 이천 원에  입꼬리가 오르락내리락했으니까. 결국 삼일  되는 ,  오천 원의 수익을 내고 모두 팔았다.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내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벌면 팔아야지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이체 수수료  원을 제하니 수익은  사천 원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올해 로또와 비트코인이라는 생전 안 해 본 길로 만 칠천 원의 불로소득을 얻었다. 그리고 돈 번 턱을 낸다며 남편과 아이에게 치킨을 쏘고, 커피를 사 먹었다. 쉽게 번 돈이 쉽게 간다고 했던가. 흥청망청 사치를 부렸더니 만 칠천 원은 모래처럼 사라졌다.






코인 거래소 어플은 진즉에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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