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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Mar 23. 2022

들기름 국수는 죄가 없다

남편과 나, 아이 이렇게 세 식구의 식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밥하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엄마는 대충 숟가락으로 양념 뚝 넣고 간장도 휘이휘이 두르며 요리를 하는 데도 뭐든 맛있다. 저렇게 대충 해도 맛있는 음식이 나와야 고수 같은데 나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요리가 몇 없다.


요리는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기도 하다. 간장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올리고당과 물엿은 뭐가 다른가, 들기름은 냉장보관이고 참기름은 실온 보관이라니 알 수 없는 세계다. 그래서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칭찬하면 대단히 어정쩡하게 웃게 된다. 정말 맛이 있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을 품고. 그래도 연차가 쌓이면서 여차저차 사람 먹을 음식은 만들어내게 되었다.


얼마 전 남편의 지인 두 분이 집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밥때가 되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들기름 국수'를 먹자고 제안했다. 아는 분이 직접 농사지어 짜 준 들기름도 있겠다, 요리 방법도 간단하겠다, 조만간 해 먹으리라 벼르던 메뉴였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처음 해보는 메뉴지만 요리 방법은 인터넷에 많으니 걱정 없었다. 들어가는 양념도 들기름, 간장, 설탕으로 간소했다. 국수만 잘 삶으면 되겠어, 하고 국수를 집어 들었다. 적당히 삶은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구고, 어른 네 명이 먹을 거니 4인분 양념을 착착 넣었다.



어라, 근데 어째 양이 좀 이상하다. 위생장갑을 끼고 비비는데 손에 잡히는 국수의 양이 허전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국수를 그릇에 담는데 딱 세 그릇이 나오고 끝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100그램을 1인분으로 생각하면 된다는데 나는 그보다 훨씬 적게 넣었나 보다. 어쩌지 하다가 나는 아이와 쌀밥을 먹기로 하고 손님상에 국수를 올렸다.


남편과 두 분의 손님이 식탁에 마주 앉아 들기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님 두 분이 너무 맛있다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엇을 넣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왔다. 정말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서 이걸 말해, 말아 고민이 되었다. 3인분을 만들면서 4인분 양념을 넣었으니 얼마나 달고, 짜고, 고소하겠는가. 물론 맛의 가장 큰 지분은 직접 농사지어 짠 들기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설탕과 간장을 과하게 넣었으니 더 맛있었을 테다.


마음이 켕겨서 계속되는 감탄과 칭찬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끝내 진실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만든 들기름 국수 1인분 레시피: 소면 100그램에 설탕 한 숟갈, 간장 두 숟갈, 들기름 두 숟갈을 넣고 김가루를 뿌려주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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