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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Dec 16. 2021

부녀의 계산법

아빠가 감을 보냈다. 시원한 곳에 두고 며칠을 기다리면 홍시가 될 대봉과 냉장고에 넣어 두면 한 달은 거뜬하다는 단감. 이 둘이 커다랗게 한 박스를 이루어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였다(왜 항상 부모님의 단위는 박스로 시작하는가. 저번에도 옥수수를 조금만 보낸다더니 큰 박스 가득 채워 보냈다). 나한테 말하면 못 보내게 하니까 이제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택배부터 부친다.


그럼 난 잔뜩 약이 오른다.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는 잘 알겠으나 상하기 전에 이것들을 전부 먹어야 한다는 목표와 거기에 매번 실패하는 과정이 강박처럼 느껴진다.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지은 먹거리를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넣는 것은 못할 짓이다. 차마 버렸다는 말은 못 하고 매번 다 먹었다고 거짓말까지 해야 한다. 네 살 아이를 포함해 고작 세 식구가 사는 집에 식재료가 푹푹 들어갈 일은 많지 않다.   


가을의 감뿐이던가. 여름에는 자두가 있고, 겨울에는 김치가 있다. 올여름에는 아빠가 산에서 수확한 자두를 서울에 갖고 와서 친구에게 팔고 38만 원을 벌었다며 자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열린 읍내 장에 출동해 나머지 자두를 12만 원 받고 팔았다고 한다. 농사짓느라 들인 품은 제외하더라도 서울까지 왕복 네 시간 반의 거리와 자동차를 운전하는 노동력, 기름값에 대해 칠십이 넘은 아빠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퇴직한 뒤 심심풀이로 시작한 아빠의 농사가 점점 커지고 있어 불안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묻혀 계신 선산에 아빠는 감나무, 자두나무, 두릅, 도라지 들을 심었다. 초반에는 비실비실하던 나무들이 밭을 일군 뒤 10년이 지나니 울창한 숲이 되었다. 더불어 해를 건너뛰며 싱겁게 열리던 작물들이 매해, 매 계절 열과 성을 다해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빠의 농사가 풍년을 기록해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일하다가 자꾸 다치기 때문이다. 벌써 산에서 아빠, 엄마가 번갈아가며 몇 번을 다쳤던가. 아스팔트 도로포장이 안 된 흙길이어서 날이 궂으면 차가 도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비가 오면 물꼬 튼다고 가고, 눈이 오면 이불 덮어준다고 가니 나는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른다. 안 간다고 해놓고 전화해보면 산이다. 그럼 난 또 약이 바짝 오른다.  


올해 비트코인으로 1만 4천 원, 로또로 3천 원을 벌었다고 몹시 좋아하던 나와 달리 아빠는 40년 넘게 매일 가계부를 쓰고, 이자율을 따져 여윳돈을 굴리는 이문에 밝은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농사일에는 어째 한없이 관대하다. 과연 남는 장사인가 따지면 아닌 게 분명하다. 산에 좀 그만 가라고 하고 싶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시라며 돌려 말한다. 산에서 키우는 감이든 자두든, 아빠에게는 장사가 아닌 장소가 주는 기쁨이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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