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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Dec 12. 2020

다시, 양평

임신 기간에는 잠을 잘 못 잤다. 화장실에 가느라 밤에 두세 번씩 깨고, 만삭에는 배가 무거워 누워 있는 게 불편했다. 다가올 출산을 생각하니 심경이 복잡해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잠 못 자고 새벽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는 주말이면 부스럭거리는 내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봐 둔 곳은 팔당 근처의 유명한 커피숍이었다. 7시 오픈 시간에 맞춰 가니 강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근처 두물머리에 갔다. 가서 연잎 핫도그를 사서 나눠 먹고 산책을 하다 집에 오는 것이 드라이브 코스였다. 주말 새벽에 출발해서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오니 차 막히는 시간도 피할 수 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셋이 함께 다녔다. 아기는 저녁 8시에 잠드는 대신 새벽 6시에 벌떡 일어났다. 무자비한 아기는 주말에도 칼 같이 일어나 새벽부터 우리를 깨워댔다. 각자 남은 일을 하고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남편과 나는 삼십 분만 더 자자고 아기에게 애원했으나 매정한 아기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자기 양말을 가져와 문 앞에 놓으며 어서 밖에 나가자고 졸랐다.


우리는 아기도 챙기고 짐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동네 놀이터도 가고, 팔당 커피숍도 가고, 두물머리도 갔다. 그렇게 몇 번 가다 보니 양평이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우리가 집을 짓는다면 가장 현실적인 지역은 양평이 아닐까 했다. 서울에 비해 양평은 땅값이 저렴하고, 전원 주택이 많았다. 그리고 서울 서북권으로는 멀었지만 동쪽으로는 다닐 만하다는 결론이었다.


결혼 초반부터 계속되던 남편의 집 짓자는 이야기를 그동안 흘려듣던 나도 산과 강이 보이는 풍경에 점점 매료되었다. 매일 이렇게 초록 산이 보이고, 잔잔한 강이 근처에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나들이에는 부동산 탐방이 추가되었다. 간 김에 바람도 쐬고 양평도 둘러보자는 생각이었다.


꼭 양평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경기도 광주와 이천에도 들러 땅을 구경했다. 이천에는 남편의 친구가 이미 주택을 지어 살고 있었다. 친구네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실과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잔디와 나무를 보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건강하게 잘 지은 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다.


심지어 그곳은 쓱배송이 된다고 했다. 내 눈은 두 배로 반짝였다. 육아를 하면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쓱배송과 로켓배송, 그리고 반찬 배달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장을 보러 다녀야 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 먹은 이천 쌀밥은 어찌나 맛있던지. 하지만 이천에서 본 땅의 가격은 1억 초중반대로 우리의 예산과 맞았지만 주변에 물류 창고가 많아서 보류하기로 했다.


그 뒤 남편이 강동구로 사무실을 옮겨 은평구에서 하남으로 이사를 왔고 우리의 양평 투어는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서 매물을 보고 연락해 직접 부동산에 방문하면 비슷한 조건의 땅을 몇 군데 더 보여주었다. 유사해 보여도 계획관리와 보전관리, 토목 유무, 땅의 방향, 진입 도로 등 땅이 가진 조건에 따라 결국엔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몰랐는데 일 년 가까이 땅을 보다 보니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땅을 5년, 10년 묵혀둘 것이 아니라 바로 집을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니 이제 막 산을 깎아 공사를 하는 곳은 제외하고, 높이 올라갈수록 뷰는 좋겠지만 눈이 오면 다니기 힘드니 이런 곳도 패스했다. 남편의 출퇴근을 위해 서종면에서도 지역을 문호리로 좁혔다. 서울보다 면적이 큰 양평이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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