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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Dec 19. 2020

오롯이 품게 된 문호리 땅


잔금을 치르는 날은 아침부터 긴장 상태였다. 우리는 셀프 등기를 할 예정이었기에 챙겨야 할 서류와 절차가 많았다. 전날 남편이 미리 이폼에서 작성해 가려고 했지만 뭔가 자꾸 오류가 났다. 잔금날 아침까지 인터넷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서 나머지는 직접 군청에 가서 하기로 했다. 부동산에도 셀프 등기에 대해 며칠 전에 미리 말해놓고, 매도인에게도 필요한 서류를 요청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부동산에 도착했다. 매도인 부부와 매수인 부부인 우리,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이 탁자에 마주 앉았다. 억 소리 나는 돈이 전산으로 오가고 각종 서류를 받고 위임장에 도장을 받았다. 위임장을 한 장 밖에 안 받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모든 절차가 별문제 없이 금방 끝났다.


매도인과 서로 덕담을 주고받은 뒤 등기를 위해 양평군청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남편이 전에 가본 적 있다는 유명한 국숫집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맛집답게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 간신히 차를 세우고 가게에 들어갔다.


메뉴 중 특이하게 ‘된장 수제비’라는 것이 있었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맛이었는데 남편은 지난번에 왔을 때 이게 맛있었다며 된장 수제비를 시켰다. 남편의 입맛은 평소에도 나와 반대였기에(나는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고, 남편은 슴슴한 설렁탕류를 선호한다) 나는 비빔국수를 시켰다. 서로 나눠먹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뒷좌석에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다섯 분이 오시더니 된장 수제비만 다섯 개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아차, 싶었다. 여럿이 와서 골고루 시키지 않고 저렇게 한 메뉴만 인원수대로 주문한다는 것은 저게 이 가게의 대표 메뉴라는 소리다. 불길했다. 핸드폰에 시선이 가 있는 남편을 다급히 불러 속삭였다.


“우리 뒷자리 아주머니들 된장 수제비만 다섯 개 시키셨어.”


남편은 자랑스레 말했다.


“거봐, 된장 수제비가 여기 메인이라니까.”


이봐, 거봐 라니! 난 들은 기억이 없는데 남편은 된장 수제비가 여기 메인이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억울해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나도 그거 시켰지, 하고 계속 부루퉁해 있다가 메뉴가 나오면 같이 나눠먹기로 하고 사태는 진정됐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더이상 투닥거리지 않기로 한다. 곧이어 비빔국수와 된장 수제비, 기본으로 제공되는 보리밥이 나왔다.


된장 수제비는 새우도 들어가고 국물도 진하니 맛있었다. 비슷한 걸 찾자면 해물 된장찌개를 들 수 있겠다. 비빔국수도 맛있었지만 된장 수제비가 월등히 맛이 좋았기에 기분이 씁쓸했지만 남편 그릇에 수저를 푹푹 담가 뺐어 먹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밥을 먹고 양평 군청으로 갔다. 토지와 도로는 각각 다른 땅이기에 우리가 등기할 부분은 토지 하나, 도로 하나 이렇게 총 두 필지였다. 은행, 세무서, 등기소 등을 분주히 오가며 등기를 위한 각종 돈을 납부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처리했다.


중간에 매도인에게 받은 위임장에 실수를 해서(등기원인은 매매일이 아닌 계약일을 써야 하는데 내가 매매일을 써넣었다) 혈압이 뚝 떨어지기도 했다. 실수를 하면 매도인 인감을 다시 찍어야 하기에 틀리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너무 기본적인 실수를 해서 내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실수를 대비해 부동산에서 서류를 주고받을 때 위임장을 여분으로 한 장 더 받으려고 했으나 매도인이 거부감을 보여 우리는 한 장 밖에 받지 못했다. 급히 매도인에게 전화를 하니 다행히 군청에 계셨다. 부리나케 달려가 위임장을 두 장 받아왔다. 실수한 부분은 등기소 직원분이 친절히 알려주셔서 새로 작성해 제출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등기소를 나선 시간이 오후 3시 45분.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긴급보육을 보내서 5시까지 데리러 가면 되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등기를 마치면 모처럼 오붓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오자고 했는데 우리가 어리석었다며 웃었다. 다른 블로그나 기사를 많이 보고 갔는데도 셀프 등기가 처음이다 보니 허둥댄 면이 있었다. 양평은 군청과 등기소가 가까워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은커녕 등기소 앞에서 사진 한 장만 남긴 채 우린 아이 하원시간에 맞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서류가 미비하면 보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일주일 뒤 우편으로 완료된 서류가 도착했다. 남편이 셀프 등기를 하자고 했을 때 그냥 법무사에게 맡기자며 난색을 보였는데 돈도 아끼고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등본에 새겨진 이름을 보니 비로소 우리가 집을 짓는다는 게 실감났다.







끝으로 이것만은 꼭 기억하시라. 그 국숫집의 메인은 된장 수제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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