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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Sep 01. 2022

후진은 처음이라서요

양평은 마을 길이 좁은 곳이 많다. 우리 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집으로 가는 길 중 약 300미터가량이 그렇다. 폭이 좁아서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다. 그래도 곳곳에 마주 오는 차를 비켜설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어서 불편하기는 해도 서로 양보하며 다닌다.      


다만 딱 한 군데 코너 지점은 예외다. 이곳은 높은 담까지 둘러싸여 있어서 코너를 다 돌 때까지 앞에서 차가 오는지 알 수 없다. 주차할 때 빼고는 후진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다른 차를 비켜주기 위해 처음으로 후진한 곳이 이곳이다. 창문을 다 내리고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번갈아 보면서도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를 만큼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반, 양평으로 이사 온 지 열흘이 되던 때였다.   

   

처음 차를 산 건 2020년 5월, 면허를 딴 건 그보다 7년 전인 2013년이다. 7년을 장롱면허로 살다가 신도시로 이사 가면서 차가 필요해졌다. 운전이 늦어진 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아서였다. 걷는 게 취미이자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었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는 걸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지하철은 없고 오직 하나 있는 버스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이 걸리는 배차 간격은 대중교통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 당시 기준으로 내후년에는 양평으로 이사 갈 예정이었으니 지금이 운전을 시작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 빠져 살다가 마침 가까운 곳에 괜찮은 매물이 있어서 보러 갔다. 함께 간 남편이 나를 부추기며 당장 구매하자고 해서 그날 바로 사게 되었다.      


쪼리를 신고 목에는 두툼한 금목걸이를 두르고, 겨드랑이에 작은 가방을 끼고 나타난 운전 연수 선생님께 열 시간의 연수를 받았다. 연수 마지막 날에는 너무 멀리 갔다가 시간이 촉박해 돌아오는 길은 선생님이 운전했다. 30분 동안 수없이 많은 차선 변경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깜빡이를 켜지 않는 신공을 보이셨다. 타산지석이라는 큰 교훈을 남긴 운전 연수였다.      


운전 연수를 받아도 한참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신도시라 도로가 넓고 차가 많지 않아 초보운전자로서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내가 다니는 낮 시간에는 주차 공간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원체 겁이 많아서 집 근처만 다니고 20분 거리의 잠실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남편은 차 두고 왜 버스 타고 다니냐며 의아해했지만 그 넓은 도로를 무난히 달릴 자신이 없었다. 집에 차 두고 뭐 하는 건가, 나도 자괴감이 들었지만 잠실은 주차 요금이 비싸다고 둘러댔다(물론 남편은 속지 않았다).      


양평에 이사 오니 소극적이나마 운전을 하다가 온 건 다행이었다. 양평은 대중교통이 대도시만큼 활발하지 않기에 차가 필수다. 성인 수만큼 차가 있는 집도 다수다. 우리 집은 그나마 도보 15분 내외로 편의시설 이용이 가능하고 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는 데도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 로켓배송이나 새벽배송이 안 돼서 식재료는 마트에 가서 사야 하고, 차로 5분 거리이긴 하지만 아이 어린이집도 데려다줘야 한다.      


처음 이사 와서는 마을 초입의 좁은 길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 일주일 동안 운전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차를 주차장에 모셔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다 과연 내 차가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좁은 길을 덤프트럭들도 신나게 다니는 걸 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래, 저 큰 트럭도 잘만 다니는데. 내가 암만해도 저 차보다는 작지.’      


운전하다 차를 세우고 북한강로의 멋진 풍경을 즐기기도 한다.


주변에 나처럼 초보운전자를 만나면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 힘냅시다, 잘해봅시다, 속으로 외친다.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 중에도 있는데 그분은 뒷유리에 ‘왕왕왕 초보’를 붙이고 다녔다. 그러다 최근에는 ‘왕왕왕’을 떼고 그냥 ‘초보’가 되었다. 지나가다 보고 감격해서 클락션을 울릴 뻔했다. 나 역시 2년 넘게 뒷유리에 ‘초보운전’을 붙였다.      


걷기 좋아하는 내가, 양평에 와서는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디든 차를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지만 장점도 있다. 이사 온 뒤 운전 실력이 늘었다. 차를 몇 번 긁기는 했지만 우리 동네, 30분 거리의 큰 쇼핑몰은 편하게 다니고 있다.

  

이제 마을 초입의 좁은 길에서 다른 차를 만나도 긴장하지 않는다. 조심해야 할 지점에서는 천천히 가고, 후진도 여전히 긴장은 되지만 예전처럼 벌벌 떨지는 않는다. 운전을 처음 하던 때에 비하면 겁 많은 내가 많이 발전한 것이다. 비켜줘서 고맙다고 다른 차가 비상등을 켜면 ‘에헤이, 비상등은 넣어둬요’라며 혼자 손사래를 치는 여유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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