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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Oct 08. 2022

놀이터 찾아 삼만리

아이를 키우다 보니 놀이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노는 게 전부이고, 놀이를 통해 크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모여서 ‘놀이’를 할 수 있는 ‘터’. 그네와 미끄럼틀, 시소 등이 갖춰진 놀이터일 수도 있고, 걷기만 해도 먼지가 날리는 장소일 수도 있다. 화려한 놀이터든 흙먼지 날리는 투박한 곳이든 아이들에게는 또래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돌 무렵부터는 같이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했다. 목적지는 집 근처의 근린공원. 집에서 5분 거리의 그곳에서 아이는 돌멩이와 나뭇잎을 줍고(입으로 가져가다가 나에게 여러 번 제지당했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으깼다. 자기 엉덩이까지 오는 계단을 기듯이 올라가고, 고양이와 눈인사를 했다. 아직 어려서 놀이기구를 탈 수는 없었지만 동네 형과 누나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걸음마 마스터 후 집 근처 놀이터에 데뷔했다.


    

아파트로 이사   놀이터는 풍족해졌다. 단지 안에 놀이터만 4개였고, 20개월로 접어든 때여서 아이도 제법 잽싸졌다. 우리는 매일 놀이터로 향했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에는 우비와 장화를 신고 나갔는데 아이가 어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저기 좀 봐! 엉덩이가 있어!”


뭐라, 엉덩이? 어디 변태가 침입해서 엉덩이를 까고 있나 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가 가리킨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웅덩이’였다. 그 뒤로 우리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엉덩이’라 부르며 첨벙거렸고, 눈이 오면 장갑과 목도리를 준비해 야심 차게 집을 나섰다. 놀이터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었다. 집에서 복닥거리느니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편이 편했다. 아파트가 아이 키우기 최고라는 말은 ‘놀이터’ 측면에서 보면 정말이었다. 아파트 놀이터만 순방해도 2시간은 훌쩍 지났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큰 걱정은 놀이터였다. 가을의 끝자락, 겨울 초입에 이사를 온 터라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대기를 걸어 놓고 한 달여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동안 동네를 구석구석 둘러봐도 놀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주변에 어린이집도 세 군데나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어서 아이들이 없는 동네가 아닌데 놀 곳이 왜 없을까? 강을 따라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고, 공영 주차장도 곳곳에 있는 걸 보면 땅이 없어서 못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작게라도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날씨 상관없이 모여서 놀 텐데.     


마을 초입에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작은 놀이터는 겨울이라 그런지 관리가 안 되었다. 탈 수 있는 건 그네뿐, 미끄럼틀은 얼룩덜룩해서 올라갈 수 없었다. 물티슈로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때에 미끄럼틀 본연의 기능을 잃은 채 한 번에 미끄러지지 못하고 자꾸 중간에 턱턱 걸렸다. 그나마 있는 이 작은 놀이터도 관리가 소홀해서인지 겨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밖에 없었다.      


황량하던 겨울 놀이터


안 되겠다 싶어 지역 카페에 ‘놀이터’ 관련 글을 검색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나와 고민이 같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근처에 갈 만한 놀이터 있나요? 아이가 놀이터 가자고 노래를 불러요."


“어린아이들 어디서 노나요? 집에서 놀아주는 것도 한계네요. 주변에 놀이터 있을까요?”     

          

답변도 같았다.               


“근처에는 없어요. 차라리 차 타고 근처 도시의 키즈카페로 가세요.”

     

“나무 많고 자연이 가까이에 있는 건 좋은데 아이들 놀이터는 없어요.”  

             

전원주택은 자연은 가까이에 있지만 놀이터는 저 멀리 있었다. 네 살 아이는 “심심해” “놀이터 가자”를 달고 살았다. 마당에 아이가 좋아하는 모래놀이 세트를 사다 놨지만 혼자 하는 놀이는 쉽게 지쳤다. 그렇다고 매번 돈 쓰며 키즈카페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내가 이사 오기 한 달 전,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들이 군에 사업 제안을 해서 작게나마 실내놀이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전까지 아이와 자주 이곳을 방문했다. 마을회관으로 쓰던 건물의 1층인데 레고와 보드게임, 음식 모형이 있어 아이는 그곳을 좋아했다. 겨우내 방치된 마을 초입의 놀이터도 봄이 되자 청소를 했다. 날이 풀리자 아이들이 조금씩 노는 걸 보니 겨울이라 사람이 없었나 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지금은 하원 후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한두 시간 놀다가 집에 온다. 예전 아파트 놀이터에 비하면 공간도 작고, 놀이기구도 소박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솔방울 하나만 갖고도 까르르 웃으며 저들끼리 잘 논다.               

 

어린이집 하원 후나 주말에는 서로의 집에 방문해 한나절씩 놀다 온다. 주택에 사는 친구가 많은데 대부분은 마당에 모래놀이나 물놀이 등 아이들이 놀거리를 구비해 놓고 있다(부모들의 생존 키트랄까). 처음엔 엄마와 같이 가다가 얼굴이 익숙해진 요즘은 아이만 데려다주고 몇 시간 지나서 데리러 간다. 아이가 친구 집에 가면 다음엔 내가 그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해 같이 논다. 둘이 있으면 아이가 날 찾지 않으니 나도 편하다. 자기들끼리 온 집을 쏘다니며 놀면 나는 간식과 밥을 챙겨주기만 하면 된다.                


이사 초기 부족하기만 했던 놀이터 공간은 이렇게 친구들 집에 돌아가면서 놀고, 하원 후에는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노는 것으로 메꾸어지고 있다. 지금 처한 상황에 맞춰 여러 가지 놀 궁리를 하는 중이다. 주말이나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면 플랜 A부터 Z까지 풀가동하고 있지만 다 같이 아무 때나 만나서 놀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없는 건 여전히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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