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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뱅크 Sep 27. 2022

서울대 나온 증권사 팀장님은 어쩌다 60억 빚이 생겼나

돈, 드라마를 만나다



기훈 : “60억? 너 증권회사 다닌다더니 주식을 한 거야?”

상우 : “주식은 그렇게 크지 않고… 선물을 했어”

기훈 : "선물? 선물로 그 돈을 써? 누구 선물을 얼마나 비싼 걸 산 거야?"

상우 : “그런 선물 아니고… 그런 게 있어"



최근 미국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오징어게임'(황동혁 감독)에 나온 대사입니다. 456억 원의 상금을 노리고 목숨을 건 게임에 참여한 기훈(이정재)과 한 때 ‘쌍문동의 자랑, 쌍문동이 낳고 기른 천재' 상우(박해수)가 오랜만에 만나 나눈 대화죠.


아마 기훈은 상우가 말한 ‘선물’을 ‘gift’로 생각했을 텐데요. 상우가 말한 선물은 그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선물이 뭐길래 똑똑한 상우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게 했을까요.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 상품 ‘선물’


전 세계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오징어게임'은 언뜻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게임 장르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돈과 처절하게 얽힌 우리 사회의 면면이 담겨 있습니다.

기훈은 자동차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사업을 해보지만 실패하고, 도박과 사채에 손을 대죠. 동생과 함께 탈북한 새벽(정호연)은 아직 북한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려 하고요.

상우도 사연이 있어요. 서울대 경영학과를 수석 합격해 증권사 팀장까지 됐지만, 지금 빚은 무려 60억 원. 모두 ‘선물' 때문인데요. 극중 기훈을 내심 무시하는 상우는 선물이 뭔지 설명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트위터


여기서 상우가 말한 선물은 금융 파생상품입니다. 한자로는 ‘먼저 선(先), 물건 물(物)’을 쓰는데요. 미래의 정해진 시점에 거래할 가격을 지금 시점에 합의하는 걸 말합니다.


선물 거래는 투기성이 높은 대표적인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 상품이에요. 흔히 ‘베팅’이라고 표현할 정도죠. 왜 그럴까요? 선물의 중요한 두 가지 특징에 이유가 있어요.


1) 제로섬 게임 (한 사람이 얻으면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잃음)


예를 들어 볼게요. 어느 꽃 피는 봄날, 제가 농부 A에게 100만 원을 주면서 ‘지금 말고 6개월 뒤에 옥수수 한 자루를 달라’고 합니다. 농부 A는 승낙을 합니다. 미래의 가격으로 거래를 하는 거죠. 이게 선물 거래입니다.

그런데 6개월 후 옥수수 한 자루 가격이 200만 원이 됐다면? 저는 100만 원 이득, 농부 A는 100만 원 손해죠. 200만 원에 팔 수 있는 걸 100만 원에 팔았으니까요. 선물은 이렇게 한 사람이 잃으면 한 사람은 버는 구조입니다.


2) 레버리지 효과 (지금 돈이 충분히 있지 않아도 살 수 있음)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제가 농부 A에게 줄 100만 원 중 10만 원이 있어도 거래가 된다는 거에요. 증거금 10%만 있어도 되거든요. 이게 레버리지입니다.


■ '레버리지'란 무엇이죠?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는 원래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기구를 말해요. 금융에서는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높이는 효과라고 할 수 있죠. 잘 이용하면 비교적 쉽게 이득을 보지만 반대로 손실이 나면 타인의 자본까지 갚아야 하죠.


6개월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농부 A에게 증거금 10만 원만 내고 나중에 옥수수 한 자루를 100만 원에 살 권리(옵션)를 샀다고 할게요. 그런데 지금 옥수수 한 자루가 200만 원이 됐다면?


저는 200만 원짜리 옥수수를 100만 원에 사고, 이걸 되팔아 100만 원 이익을 봅니다. 그럼 증거금 10만 원을 제하고 90만 원을 얻겠죠.


반대로 옥수수 한 자루가 50만 원이 됐다면? 50만 원짜리를 100만 원에 사게 됐으니, 50만 원 손해인 겁니다. 증거금 10만 원을 제하고 총 40만 원을 메꿔줘야 하죠.


출처: 넷플릭스 공식 트위터


상우는 파산 신청을 할 수 있을까?


기훈 : 그냥 개인파산 신청 같은 거 하면 안 되나? 그거 하면 돈 안 갚아도 된다고 하던데.
상우 : 내 거 말고 어머니 것까지 다 들어갔어. 집이랑 엄마 가게까지 다.


과연 상우가 개인 파산이 가능할까요? 아마 어려우니 이 잔인한 게임에 참가했겠죠. 문제는 상우가 자기 돈으로만 선물 거래를 하지 않은 데 있어요.


극중 상우의 일을 모른 채 열심히 장사를 하는 상우 어머니에게 경찰이 찾아옵니다. 상우에게 횡령, 사문서위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위한반 혐의가 있다고 말하죠.


상우가 회사 돈, 고객 돈까지 몰래 빼돌려 선물 거래를 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면서 진 빚은 비면책채권, 즉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채권이 되는데요. 쉽게 말해 무조건 갚아야 하는 겁니다. (민법 제750조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결국 상우는 고객과 회사, 어머니 돈까지 끌어들였는데 선물 거래에 크게 실패해 경찰의 추적까지 받고 있었을 겁니다. 개인파산도 불가능해 오징어게임에 참가하게 됐을 거고요. 어쩌면 ‘오징어게임’은 선물이 얼마나 위험한 금융 상품인지 상우를 통해 말하는 듯합니다.


 유튜버 영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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