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영화를 만나다
- 사장: 또 늦었군, 맨날 늦어
- 피터: 죄송해요, 소동이 좀 있어서
- 사장: 서둘러, 주문 온 지 21분이나 지났어. '버튼 앤 스미스'사, 엑스트라 라지 8개. 우린 "29분 내 배달"이 생명이야. 8분만 지나면 피자 값은 물론 고객까지 잃게 된다고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시리즈에서 주인공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우연한 기회로 영웅 ‘스파이더맨’이 되죠. 이후 엄청난 신체 능력으로 위험에 처한 뉴욕 시민을 지켜내는데요. 화려한 영웅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피자 배달을 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갑니다.
시리즈 2편 초반, 파커가 피자 가게 사장님이 내건 29분 원칙에 따라 남은 8분 안에 피자 8판을 배달해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아무리 능력 좋은 배달원이라도 8분 안에 배달을 마치는 것은 어려워 보이는데요. 거미줄을 타고 다니는 스파이더맨이라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스파이더맨이 한국에서 거미줄을 타고 배달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정확한 금액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배달 산업 구조를 알아야겠죠?
과거의 피자 배달은 파커처럼 피자집에 소속된 배달원이 직접 배달을 했죠.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많이 쓰면서 소비자와 점주 사이엔 배달 주문 플랫폼이, 점주와 배달원 사이엔 배달대행업체가 추가됐어요.
우리 모두 음식을 주문할 때, '배달팁'이라는 항목을 본 적 있을 텐데요. [배달비 = 배달팁 + 배달료]에요. '배달팁'은 말 그대로 소비자가 배달원에게 주는 ‘팁'이고, '배달료'는 업주가 부담하는 것이죠.
배달비를 받은 배달대행업체는 대행수수료 등을 뺀 수당을 배달원에게 줍니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포물선을 그리며 활강하는 동작을 '웹 스윙'이라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면 자동차보다는 확실히 빠르고, 위기의 순간엔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기도 해요. 샘 레이미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웹 스윙 속도는 무려 시속 144km!
이를 바탕으로 스파이더맨이 배달하는 상황을 생각해볼까요. 일반 자동차, 오토바이와 달리 스파이더맨은 교통 통제를 받지 않으니 가게와 배달 도착지의 직선거리만 생각하면 되겠죠.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직선거리 기반 배달료 예시
500m 이하 : 3,000원
500~1,500m : 3,500원
1,500m 초과 : 500m당 500원 추가
시속 144km로 2km를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은 단 50초. 쉽게 계산하면 2~2.5km 거리를 배달할 때마다 4천 원의 배달료를 받고, 2천 원 정도의 배달팁을 받으니 한건 당 6천 원의 배달비를 버는 셈이죠. 한 건 당 배달 시간을 약 2분 정도라 치면, 이론적으론 1시간 동안 30번의 배달을 오가며 약 18만 원을 벌게 됩니다.
기본적인 상황만 생각해도 이 정돈데, 스파이더맨이 점점 노하우가 쌓여 여러 가게의 배달을 한 번에 처리한다면..? 단순 배달만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될 수 있겠네요. 스파이더맨이 만약 지금 한국에서 음식 배달을 한다면 초인적인 능력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 듯 합니다.
- 고객: 늦었네요. 돈 못 드려요
- 사장: "29분 내 배달" 정책은 약속이야. 너한텐 아무 의미 없겠지만, 나한텐 중요하다고. 넌 해고야, 나가!
그런데 사실 스파이더맨은 영화에서 ‘29분 배달 정책’을 지키지 못했어요. 거미줄을 타고 피자 배달을 하던 중 어려움에 처한 시민을 도왔기 때문이에요.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막강한 빌런을 상대하느라 음식을 제시간에 배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웹 스윙'을 이용해 배달하면 음식이 이리저리 흔들릴 테니 상태도 온전하지 않을 거예요. 피자는 아마 ‘떡'이 되어 있을 테고, 찌개나 탕 같은 국물류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결국 그가 한국에 오더라도 여전히 영웅의 본분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배달은 영 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 유튜버 <영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