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카오뱅크 Sep 06. 2024

완벽한 사장님이 비리를 저지른 이유

금융생활 가이드

 

한국 전자기업 삼진그룹에 미국인 CEO가 부임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빌리박. 잘 생겼을 뿐 아니라 합리적으로 일하는 사람인데요. 흔히 말하는 ‘꼰대 기질’이 없어 젊은 직원들의 지지를 받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사장님이라 할 수 있죠. 



완벽한 빌리박의 정체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은 대기업 말단 사원 3인방이 회사의 비리를 밝히는 과정을 그립니다. 함께 토익을 공부하던 세 사람은 회사가 페놀 방류로 지역민의 건강을 해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는데요. 


심부름하러 공장에 갔다가 하수구에서 검은 폐수가 쏟아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죠. 심지어 평소 지지하던 빌리박이 방류량을 더 늘리는 데 앞장서 왔다는 내용이 담긴 자료를 입수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세 사람. 이들은 조직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는데요.


사실 빌리 박은 ‘글로벌캐피탈'이라는 헤지펀드 출신입니다. 삼진그룹에 위장 취업한 것이죠. 가상의 기업인 글로벌캐피탈은 인수합병(M&A)을 일삼는 펀드 운용사인데요. 빌리박이 비리를 저지른 이유는 하나예요. 삼진그룹의 부정 이슈가 부각되면 주가가 내려가고, 그러면 더 많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을 거라 계산한 것이죠.  



모티브가 된 론스타 게이트


M&A 협상은 더 싸게 사려는 인수 측과 더 비싸게 팔려는 매각 측의 경쟁입니다. 그렇기에 글로벌캐피탈이 삼진그룹 단점을 찾는 게 아주 특이한 행태는 아니에요. 매물의 약점은 일반적으로 가격 할인 요인이 되니까요. 


인수 측은 주식매매계약(SPA)을 맺기 직전까지 재무실사(FDD), 사업실사(CDD), 법률실사(LDD)에 ESG실사(EDD)까지 펼치며 매물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죠. 집을 사기 전에 도배 상태도 살펴보고, 화장실 물도 내려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다만 저가에 인수하기 위해 일부러 매물에 흠집을 내는 행동까지 일반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데요. 실제 M&A 시장에서도 인수 측이 고의로 부정 여론을 주도해서 기업 가치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려는 시도가 포착되곤 하죠. 


영화 속 글로벌캐피탈의 M&A 전략은 실제 '론스타 게이트'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여요. 론스타 게이트는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을 썼다는 의혹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 비율을 사실과 다르게 추정하고, 이 정보를 금감원까지 전달하며 인수에 성공했다는 것이죠.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은 사건입니다. 

 


최선의 방어는 투명한 경영


모든 헤지펀드가 반칙을 일삼는 건 아닙니다. 일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회사의 불투명한 경영활동을 수면 위로 드러내 주주의 이익을 증대하기도 하죠. 결국 외부 세력의 회사 흔들기에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투명한 경영이 될 것입니다. 삼진그룹의 세 말단 직원이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던 것처럼요. 



글 박창영
매일경제 기자. 문화부를 비롯해 컨슈머마켓부, 사회부, 산업부, 증권부 등을 거쳤다. 주말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 리뷰를 연재한다. 저서로는 ‘씨네프레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