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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냥 종이 아닌가요?

무엇이든 물어보쌤

by 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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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저께 날이 더워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어요. 차가운 사이다를 한 모금 들이켜는데 진짜 행복하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돈은 그냥 종이일 뿐인데, 이걸 주면 왜 사람들이 내가 필요한 어떤 것을 내어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돈이 뭐길래 우린 돈을 벌고,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걸까요?



선생님도 비슷하게 ‘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는 만 원권 지폐를 생각해 봐요. 지폐 자체는 그냥 녹색 종이예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입을 수도 없어요.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사이다 캔 열 개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그렇기에 편의점에서 만 원을 내고 사이다 열 개와 바꿀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믿고, 다른 사람들도 믿기 때문이죠. 모두가 믿는 한 ‘1만 원 = 사이다 10개’라는 게 작동해요.


돈은 심리적 상징이에요

돈은 보이는 물질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약속이자 심리적 상징이에요. 돈은 분명 만져지는데,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태평양 한가운데에 야프(Yap)라는 작은 섬이 있었어요. 야프섬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돌이 돈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라이(Lai)라고 불리는 바위 돈은 크기가 클수록 가치가 컸고요. 너무 큰 바위는 가지고 다니기 힘들었겠죠?

집을 사고판다고 생각해 봐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오고 가야 했겠죠. 이럴 땐 집을 거래하는 두 사람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였대요. 그리곤 라이와 집의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증서를 쓰고, 라이는 그냥 있던 자리에 놔두었다고 해요.


야프섬의 큰 부자 중 한 사람은 라이를 배로 싣고 오다가, 파도에 배가 난파되어 바닷속에 라이를 가라앉히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라이는 사람들이 꺼낼 수 없는 바닷속 깊이 있지만, 야프섬 사람들은 바닷속 라이의 가치를 인정해 준대요. 바닷속 라이를 두고, 그 라이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약속하면 집도 살 수 있는 거죠.



약속과 신뢰로 거래해요

‘보이지도 않는데, 저 바닷속에 라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집을 내어준다고?’ 의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물건을 살 때 지폐를 내지 않고, 카드로 계산할 때가 많잖아요. 그럼, 여러분의 은행 통장에서 숫자로 돈이 얼마나 빠져나갔다고 찍힐 뿐이죠.

진짜 지폐가 왔다 갔다 하진 않아요. 큰 규모의 돈이 오가야 하는 건 더 하죠. 집을 사고팔 때, 가방에 지폐를 가득 채워서 들고 오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어요.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보내는 건, 내 은행 통장에 있는 데이터를 다른 사람 통장으로 보내는 거죠.

야프섬 사람들이 A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바닷속 라이가 이제 B라는 사람 것이 되었다고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물론 지폐와 동전이 눈에 보이지만, 그 가치는 우리 사회가 약속하고 신뢰해서 생기기 때문에 돈은 심리적 상징이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사람만이 이러한 심리적 상징을 만들 수 있어요.

침팬지에게 바나나 1개와 1만 원권 지폐 중 고르라고 하면 뭘 고를까요? 당연히 바나나를 고를 거예요. 침팬지에게 “이 녹색 지폐로 바나나 열 개를 살 수 있어!”라고 얘기해줘도 소용없겠죠. 사람만 유일하게 돈을 고를 수 있어요.

사람들이 만든 심리적 상징 중 가장 성공한 게 돈이라고 생각해요. 돈은 누구나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협력할 수 있어요.

큰 빌딩을 만든다고 생각해 봐요. 많은 사람이 필요하겠죠? 디자인 건축가, 구조설계 건축가, 시공에 필요한 인력 등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는 건, 일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인데요. 돈이 발명되고 돈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기에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게 아닐까요?



김나영, 교사 / <최소한의 행동경제학>, <실험경제반 아이들> 시리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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