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열 수석심사역이 내다보는 2024 벤처투자 시장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컴팀입니다.
2023년은 스타트업에게 잔인한 한 해였습니다. 창업자들은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를 100점 만점에 46.5점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지난해에 비해 7.2점이나 낮은 점수인데요. 점수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투자 위축'이었습니다. 그만큼 올해 벤처투자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2024년은 어떨까요? 장원열 카카오벤처스 수석은 내년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올해와 같은 혹한기는 아닐 거라고 말입니다. 장 수석은 카카오벤처스에서 시장 분석(Market Insight)과 투자를 맡고 있는데요. 컴팀에서 장 수석을 만나 올해 시장 상황을 되돌아보고, 내년 전망과 주목해야 할 키워드까지 들어봤습니다.
Q. 올해 벤처투자 시장, 어땠나요?
A. 아직 4분기가 진행되고 있어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올해 3분기까지 벤처캐피탈(VC)과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가 투자를 집행한 금액은 총 7조 6874억 원입니다. 2019년보다는 늘어난 금액이지만, 분위기가 좋았던 재작년과 작년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수치예요. 건당 투자 금액을 보면 더 확실한데요. 예전보다 20~30% 내려 앉았습니다. 스타트업 한 곳에 투자되는 금액이 그만큼 감소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보니 스타트업 대표님들 입장에서는 시장에 부는 찬바람이 더 혹독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Q. 심사역으로서도 어려운 분위기를 체감하셨어요?
A. '투자할 곳이 많지 않다.' 카카오벤처스와 같은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심사역들을 만나면 다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창업자들이 스타트업 시장에 나오는 걸 주저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까,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창업 시기를 늦추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초기 단계에서의 투자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요. 심사역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통해 시장이 어렵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죠.
Q. 시장이 어렵다보니 많은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문을 닫은 곳도 있었는데요.
A. 그렇죠. 시장 상황이 좋았을 때는 스타트업들이 시리즈 C, D까지 투자를 잘 받았어요.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면 VC에서 과감히 투자했거든요. 그러면 스타트업은 받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고, 마케팅 예산을 늘리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죠. 문제는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VC가 수익성을 따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성장 가능성보다는 '실제로 돈을 벌고 있느냐'가 투자의 기준이 됐어요. 이런 상황에서 인재 영입, 마케팅 등으로 영업 손실이 커진 기업은 후속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진 경우가 있죠.
Q. 반면 혹한기임에도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도 있었어요.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A.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인공지능(AI)입니다. 오픈AI의 GPT-3가 쏘아올린 생성형 AI 열풍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쏠렸어요. 관련 스타트업은 투자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AI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구현할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반도체 스타트업이 올해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불리고 투자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죠. 대표적으로 카벤 패밀리인 '리벨리온'이 있습니다.
또 올해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기업은 대부분 수익을 잘 내는 곳이었습니다. 앞의 케이스와 반대로, 수익성을 보여준 기업에는 자금이 몰린 거예요.
Q. '부익부 빈익빈' 현상인 거네요.
A. 네. 지난해에 제가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전망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거라고 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VC들이 여러 기업에 투자를 해놓고, 그중 소수의 기업에서 펀드 성과를 이끌어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한, 수익을 내는 기업에만 집중해서 투자하고 있습니다. VC 펀드도 마찬가지예요. 5억 달러 이상의 메가펀드에만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어요.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다는 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는 부정적인 상황이에요. 초기 단계에 있거나 혹은 약간의 투자가 이루어지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이 외면 받으니까요.
Q. 글로벌 시장은 좀 다른가요?
A.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투자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시리즈 D, E 단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많이 빠졌는데요. 아직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스타트업과 VC 간 힘의 균형을 살펴봐도 여전히 VC 쪽에 힘이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천억 원대의 투자도 자주 이뤄졌죠. 그러나 지금은 AI와 관련된 극소수 기업을 제외하고는 그런 대규모 펀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투자 빙하기에서 벗어났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아직이에요.
Q. 그럼 요즘 같은 불황기에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런웨이*를 더 길게 가져가야 합니다. 지금 발표된 자료들을 보면, 스타트업이 다음 투자 라운드로 가는 타이밍이 계속 늦춰지고 있습니다. 투자를 받을 때 생각해둔 기간보다 최소 반년 이상은 더 여유를 두고 계획을 세우셔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해 회사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런웨이: 투자 유치 없이 현재 가진 자금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
Q. 내년엔 분위기가 달라질까요? 내년 시장 전망이 궁금해요.
A. 내년에도 쉽게 좋아지진 않을 겁니다. 당장 VC에 투자 자금이 잘 안 모이거든요. 시장 금리가 높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는 VC 펀드가 더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VC도 자금 조달이 어렵고,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다만 이미 바닥은 찍었고, 내년부터는 시장이 조금씩 기지개를 켤 겁니다. 우선 어려운 시기가 오래가다 보니 체질 개선에 성공한 스타트업들도 많아졌어요. 수익과 효율에 집중해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죠. 그리고 AI와 같은 트렌드가 나타나 투자 시장을 한 번씩 달궈주고 있고요. VC 역시 얼어붙은 시장에서 어떻게 투자할지 고민을 많이 해온 상태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맞물려 내년은 올해와 같은 수준의 혹한기는 아닐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아질까요?
A. 네 조금씩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펀드부터 살펴보면, 올해 대형 펀드가 생각보다 수익률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젠 소규모로 분산투자하는 중소형 펀드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까 싶어요. VC도 특정 유망 기업에만 투자하기보다는 잠재력을 보고 베팅하는 경우도 올해보단 많아질 겁니다. 탑티어 스타트업은 그만큼 몸값이 비싸서 높은 멀티플**을 낼 수 없기 때문이죠. VC가 그동안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그 회사들이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거예요.
**멀티플: 투자금 대비 회수한 금액의 비율
Q. 올해의 키워드가 AI였다면, 내년의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A.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는 VC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런데 최근 VC 업계에서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는 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로 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용자와 트래픽이 많아도 비즈니스 모델이 불명확한 곳들이 많기 때문이죠. 한 마디로 돈을 잘 못 번다는 거예요.
그러나 올해 저희 패밀리를 비롯한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제는 매스 마켓보다 니치 마켓, 즉 틈새시장을 노리면서도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들이 눈에 띕니다. 마침 성숙기에 들어선 플랫폼 스타트업의 사례도 꽤 쌓였는데요. 이처럼 좋은 선례를 후발 주자들이 빠르게 흡수해서 성장한다면, 글로벌 진출에도 성공하는 케이스가 곧 나오지 않을까요? 내년 상반기 즈음에는 플랫폼 기업의 봄날이 다시 찾아올 거라 봅니다.
Q. 마지막으로 창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다시 투자 시장에 나오고, 창업에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당히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창업 아이템, 회사 운영 방식, 마케팅 수단 등이 워낙 인터넷에 활발히 공유되니까요. VC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VC에서 여기 투자했는데 대박났다더라' 이런 소문이 돌면 비슷한 아이템을 하는 스타트업부터 찾으려 하죠.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빠르게 뒤바뀔 여지도 있다는 거예요. 내년에 해외 진출이나 기업 공개(IPO)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한두 곳만 나와준다면, 곧바로 시장이 반응할 겁니다. 올해 시장이 어려워서 투자 유치, 혹은 창업 자체를 망설였던 분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도 조금만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이 활성화되고, 얼어붙었던 투자 시장도 에너지를 되찾을 거예요. 대표님들이 신바람 나게 사업하실 수 있도록 카카오벤처스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서포트하겠습니다.
장 심사역이 짚어준 내년 벤처투자 시장 트렌드,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이 링크를 눌러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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