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SI 투자를 위한 조건과 SI가 실패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스타트업에게 SI(Strategic Investment: 전략적 투자)는 귀중한 자금조달 방법 중 하나입니다.
스타트업은 특유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시장의 불신 탓에 사업 파트너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SI를 통한 대규모 기업과의 협력은 스타트업에게 좋은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SI로 인해 경영권을 침해받거나 성장에 제동이 걸린 스타트업 사례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대표님들이 SI를 제안 받아도 수락해야 할지 고민하시는데요. 저희 카카오벤처스도 종종 패밀리가 언제·어떤 조건으로 SI를 받아야 할지 논의하곤 합니다. 그런 논의의 결과를 일부 공유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 입장에서) 성공적인 SI 투자를 위한 조건과 SI가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카카오벤처스의 생각을 이번 글을 통해 적어봤습니다.
스타트업 투자는 투자 목적에 따라 크게 재무적 투자(FI, Financial Investment)와 전략적 투자(SI, Strategic Investment)로 나뉩니다.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FI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피투자사가 최대한 성장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카카오벤처스 같은 VC 투자가 대표적인 FI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SI는 피투자사와의 협력을 통해 투자사 자신이 성장하는 것, 즉 시너지를 내는 게 목적입니다. 예컨대 택배사가 드론 개발사에 투자한 뒤 피투자사의 드론을 자사 배송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계약을 맺는 것도 SI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공적인 SI를 위해 고민해보셔야 할 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SI의 적기를 파악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스타트업마다, 사업 아이템마다 적절한 시기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 라운드에 SI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할 순 없는데요.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SI는 시리즈B 투자가 이뤄질 즈음에 받는 게 좋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스타트업이 투자자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까진 성장해야 창업자가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단 게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나 최근 시리즈A에 SI를 받는 사례도 늘고 있는 만큼 각 스타트업의 내부 사정과 SI의 내용에 따라 적정 시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점은 SI는 “SI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때” 받아야 한단 점입니다.
SI 시점을 꼭 특정 라운드에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SI가 사업에 유리하게 작동하리라 판단되면 이른 시점에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SI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시점은 빨라도 프리A~시리즈A 정도가 보통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프리A 이전 라운드에 SI를 받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SI를 한번 받는 순간, 다른 유사한 투자자로부터 SI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SI는 단순한 기업 간 거래나 제휴가 아닙니다. SI를 받은 스타트업은 투자자와 한 배를 탔단 인상을 줍니다. 다른 모든 SI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돼 타 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하기 쉽지 않아집니다. 따라서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엔 빠른 확장에 목말라 하나의 SI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기업과 컨택하고, 여러 SI를 탐색하며 시장을 파악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에 SI를 받아서 빠르게 성장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SI 없이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면 SI를 받는 게 좋습니다.
예컨대 IP 활용이 중요한 스타트업이라면 SI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K팝이나 웹툰 IP를 이용한 2차 창작이 주요 아이템이라면 판권을 모으는 게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습니다. 이때는 대량으로 판권을 계약할 수 있는 창구를 뚫어놓기 위해서라도 대형 엔터사나 웹툰 플랫폼 등으로부터 SI를 받으면 판권 확보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거나 IP 사용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됨으로써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겠죠.
그러나 ‘SI 없이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SI에 의존적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즉 SI로 인해 사업이 장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IP 사업일지라도 한 SI가 모든 IP 판권을 제공할 순 없습니다. 따라서 SI 덕분에 초기 시장 진입은 수월해도, SI 탓에 점차 스타트업이 범용성과 경쟁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시장의 사이즈나 스타트업이 지향하는 바와 연결됩니다. 특정 SI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해서 해당 SI와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면 SI를 받는 게 필요하겠죠. 거대 커머스나 플랫폼과 좋은 조건으로 연동해 높은 인지도를 쌓는 게 목표인 경우에도 SI가 좋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앞서 말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SI에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단 뜻이기도 합니다.
SI는 최종 투자가 아닙니다. 후속 투자를 늘 염두에 두면서 SI를 받아야 하는데요.
투자를 받을 땐 밸류에이션과 투자액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SI는 보통 전문 투자자가 아닌 일반 대기업에 의해 이뤄지다 보니 SI의 밸류가 시장이 생각하는 밸류보다 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부풀려진 밸류는 후속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A사는 기업 내외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들에게 SI를 제안하면서 별 고민 없이 높은 밸류를 줬습니다. 단기적으론 투자액이 많아서 좋을 수 있지만 추후에 FI를 받을 땐 SI에서 과장된 밸류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점은 고려해야 합니다.
독점권·사업동의권은 제외하자
SI에 대한 의존도나 SI의 경영 개입 정도를 높일 만한 조항은 최대한 제거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업에 대한 독점권이나 사업동의권은 꼭 없애야겠죠. 차량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B사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 스타트업 B사의 사례
B사는 국내 대기업과 SI를 받았는데요. B사는 계약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SI가 제조하는 부품만 사용해야 하는 등 SI로 인해 오히려 사업이 축소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고 계약서에 “SI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삽입했다고 합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어
단, 일반적으로 ‘의사결정 시 SI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등 사업동의권에 관한 내용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굳이 협상 과정에 잡음을 만들면서까지 ‘의사결정 시 SI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라고 명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보통은 사업동의권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면 SI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분 할당은 적을수록 좋다
계약서에 스타트업에게 유리한 조건을 삽입하는 건 SI의 발언권, 즉 지분율이 낮을수록 쉽습니다. 따라서 너무 높은 밸류나 많은 투자액을 받기보다 다음 투자를 유치하기 전까지 필요한 자금만 조달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고심해서 SI를 성사시켜도 기대한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걱정하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저희 경험을 반추해봐도 스타트업과 투자사가 SI를 통해 시너지를 얻은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해당 단락에선 SI가 실질적인 시너지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와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시너지를 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전략적 투자자는 보통 전문 투자자가 아닌 일반 기업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투자 수익이 아닌 장기적인 시너지나 재무제표상 개선점입니다. 문제는 기업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실무자가 아닌 경우가 많단 점입니다.
투자자가 기대하는 장기적인 시너지는 실무보다 이론적으로 추산되곤 합니다.
그렇게 실무가 고려되지 않은 SI가 이뤄지면 실무자는 그간 잘 해오던 업무에 갑자기 외부자(스타트업)이 끼어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무진이 생각보다 스타트업에 협조적이지 않을 수 있고, 협조하고 싶어도 이론과 실무의 괴리로 인해 협력 과정이 삐걱거릴 수 있습니다.
사내 정치 문제로 인해 시너지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I 딜을 이끄는 담당자의 사내 입지가 약할 경우 다른 직원들이 소극적으로 협조하거나 협업의 범위가 축소되곤 합니다. 아예 SI 담당자가 퇴사를 할 경우에도 시너지를 위한 동력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 나쁜 사례
콘텐츠 기업 C사와 통신사 D사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당초 D사의 플랫폼 내에서 C사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려고 했으나 현재는 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해당 딜을 이끌었던 D사 부사장의 사내 입지가 약해지면서 시너지가 사라진 사례입니다.
▽ 좋은 사례
자동차 부품 제조사 F사는 주류 플랫폼 E사에 SI를 했습니다. F사는 자사 제품을 보관하기 위해 큰 물류창고를 마련했는데 여러 악재가 겹치며 창고를 마냥 비워 둘 수밖에 없었는데요. 창고 건설이 F사 회장이 주도로 이뤄진 만큼 손해를 메우기 위해 E사와 빠르게 SI를 맺고 해당 창고를 이용한 주류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회장이 직접 딜을 이끈 만큼 실무진도 적극 협조하면서 E사와 F사 간 시너지가 잘 일어난 사례입니다.
종종 투자사의 오너가 피투자사(스타트업)에 추가적으로 개인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위 사례와 비슷하게 실무진이 스타트업과 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괜찮은 시그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SI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애초에 서로 상충된다면 SI가 시너지를 내기 어렵습니다.
자주 보기 어려운 사례지만, 가끔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SI를 했음에도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SI가 이뤄질 당시에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이 없었지만 추후 투자사 혹은 스타트업이 상대방과 경쟁 관계에 놓일 만한 제품을 출시하는 건데요. 잘못하면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약 단계에서 서로 공유하는 사업 데이터의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게 좋습니다.
SI는 첫 컨택부터 실제 성사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과정이 순탄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SI가 전문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CVC면 몰라도 일반 기업은 내부적으로 정해진 투자 프로세스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SI 협상 중에 세부 내용이 자주 바뀌기도 합니다. 딜 담당자가 협상 중에 바뀌면 신규 담당자에게 딜에 관해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년에 성사된 한 SI는 컨택부터 계약 완료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투자 담당자가 중간에 바뀌기도 했고, 투자사가 SI를 결정한 후에도 모기업의 결재를 기다려야 하면서 계약이 지체됐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도 애가 탔지만 투자사도 계획했던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SI 프로세스는 FI의 프로세스와 다르단 점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계약 과정을 더 여유롭게 바라보는 게 좋습니다. 계약 성사 전까진 기존 사업 방향성을 SI에 맞춰서 크게 변경하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적인 SI는 대부분 단기적인 성과를 꾸준히 내는 SI입니다.
많은 기업이 SI를 통해 장기적이고 잠재적인 시너지를 얻고자 합니다.
예컨대 아직 출시 예정일도 가늠이 안 되는 제품에 상대 기업의 서비스를 활용할 때 시너지를 노리거나, 불확실한 M&A를 기대하는 식입니다. 그런 성과가 나오려면 2~3년 이상은 걸릴 텐데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협업은 보통 중간에 틀어지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장기·잠재적 시너지는 실현될 가능성이 무척 낮기 때문에 SI를 통해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이득은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일례로 한 유아용품 스타트업 G사는 국내 거대 플랫폼과 SI 과정에서 M&A 가능성까지 논의했습니다. 3~4년이 지난 지금은 M&A커녕 아예 투자사가 SI를 했단 사실조차 잊은 듯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G사는 SI 체결 직후 플랫폼을 통해 매출과 인지도를 모두 끌어올린 덕분에 나름 좋은 SI 사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SI에 대해선 딱 G사가 얻은 정도의 효과만 기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따라서 M&A를 기대하거나 구두로 M&A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도 장래에 M&A를 하기로 계약서에 명시한 게 아니라면 투자사를 고려해 사업 방향성을 바꾸지 않는 게 좋습니다. 보장되지도 않은 M&A를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축소·확장하거나 피벗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건 비단 SI 자체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M&A를 준비하기 시작한 스타트업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데요. M&A를 너무 의식하며 단기적인 이익을 흘려보내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스타트업의 SI에 관한 생각을 나열해봤습니다.
스타트업의 SI는 FI인 저희 입장에서도 깊이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이미 FI가 이뤄진 스타트업에 신규로 SI가 이뤄지는 경우 FI 투자자와 SI 투자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투자 목적(스타트업의 성장인 FI와 자사의 성장이 아무래도 우선인 SI)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과정에서 양측의 계약 내용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SI를 통해 스타트업이 성장한다면 저희를 포함한 3자가 모두 만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도 스타트업이 좋은 SI를 만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는데요. 이 글이 그런 마음이 실현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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