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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벤처스 Apr 04. 2024

헬스케어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전문성과 전략적 사고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김치원 상무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면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TPP,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위한 전략적 사고


카카오벤처스는 수많은 예비・초기 창업자를 만납니다. 제가 담당하는 헬스케어 분야는 업계 특성 상 창업자가 기술 혹은 의료 서비스에 전문성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요. 스타트업에게 전문성은 큰 장점이지만 그것이 좋은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스타트업은 기술을 연구・개발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기술을 재료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궈 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뛰어난 대학병원 교수가 좋은 사업가가 되진 못한 사례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전문성 외에 좋은 사업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요? 



리더십・인재 채용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전략적 사고를 꼽고 싶습니다. 전략을 위한 방법론은 다양하지만, 이 글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에게 추천하는 건 Target Product Profile(TPP)¹입니다. 


1) 해당 용어는 FDA가 신약 개발에 대한 가이던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업계에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FDA는 신약 개발 회사(sponsor)에게 ‘원활한 소통을 위해 회사가 개발하려는 신약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자’고 제안했고, 그게 지금의 TPP가 됐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TPP'란 글자 그대로 회사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의 모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신약 개발을 예로 들자면 지금 개발하고 있는 약이 FDA승인을 받을 때 라벨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미리 정리하는 것입니다. 보통 신약의 TPP에는 ▲적응증 ▲대상 환자 ▲용량 ▲투약 방법 ▲금기 사항 ▲부작용 등이 포함됩니다.


TPP는 기술적으론 훌륭하지만 사업화되진 못한 아이템에 적용하면 좋습니다. 기술 기반 창업자의 경우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지 않고 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헬스케어 사업은 리드타임(Lead time: 제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제품이 ‘비즈니스’란 목적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TPP를 통해 제품의 비즈니스적 요소를 하나씩 고려해 나가면 긴 리드타임이 낳는 문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2. TPP에 들어갈 내용


그렇다면 TPP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요?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TPP에는 아래 표와 같은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제품이 FDA 승인•보험 적용•현장 도입 등의 과정을 수월히 밟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를 하나씩 글로 정리해보는 방식입니다.  



위 TPP는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합니다. 다수의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국내 시장에서 충분한 수익을 얻기 어려우므로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하지만 헬스케어 산업은 국가 별로 규제와 시스템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을 주된 목표로 삼아 TPP를 작성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3. TPP 직접 작성해보기(with 알피)


이제 카카오벤처스의 패밀리사 ‘알피(ARPI)’를 사례로 TPP를 직접 간략하게 작성해보겠습니다. 


먼저 알피가 무슨 제품을 개발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알피는 ‘심전도 기반 인공지능 환자 구분(triage)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해당 시스템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의사결정을 도와줍니다. 사진과 함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3시간 전부터 시작된 급성 가슴 통증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에서 다음과 같은 심전도가 나왔습니다. 정황상 심근 경색이 의심되는데 흔히 나타나는 ST 분절의 변화는 보이지 않고 V1~V3에서 T wave 역전이 깊게 나타납니다.이런 상황에서 일단 심근 경색을 우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 속 심전도를 알피의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심근 경색에 해당하는 ACS (Acute Coronary Syndrome)이나 STEMI의 가능성은 낮다고 나옵니다. 대신 RV dysfunction(우심실 이상)과 PulmHTN(폐동맥고혈압)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나옵니다. 급성 가슴 통증과 이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 환자는 폐색전(pulmonary embolism)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피와 응급의학과 의사는 위 과정을 통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인공지능은 “조금 더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만으로 환자의 치료 결과까지 좋아질 수 있냐”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 알피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응급 상황에서는 의사가 ▲어떤 질환을 염두에 두는지와 ▲어떤 검사를 우선 실시하는지에 따라서 확진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그에 따른 대기 시간은 환자의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알피처럼 의사가 보다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게 도와주는 의료 인공지능은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알피에 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위의 표를 보면서 알피의 TPP를 간단히 작성해보겠습니다.   



(1) 용도 


심전도 분석 인공지능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습니다.


▲스크리닝 ▲위험도 구분 ▲확진 ▲동반진단 ▲치료 ▲모니터링 중 치료를 제외한 모든 용도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용도로 쓰일 때 보험 수가를 받을 확률이 높을까요? 

※ 보험 수가가 의료 인공지능의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기에 보험 수가를 전제로 TPP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알피의 경우 응급실에서의 ‘위험도 구분’이라는 용도가 가장 적절해 보입니다


・스크리닝(아직 증상도 없는 일반인에게서 이상 요소를 찾는 단계)은 가치 입증이 어렵습니다.

・확진은 심전도보다 훨씬 비싸고 정확한 검사들(e.g. 심혈관 조영술, 폐동맥 CT)이 존재하기에 수익성으로나 기능적으로나 그것들보다 우위에 서기 힘듭니다.

・동반진단은 비싼 약이 존재하는 특정 질병과 연관성이 높아야 하는데, 알피는 아직 그런 연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모니터링은 일반적인 응급질환보다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알피의 용도는 ‘(응급실에서의) 위험도 구분’이 가장 적절해 보입니다. 심전도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필요한 다음 의사결정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응급실로 국한할 필요는 없으며 입원환자→외래환자 순서로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2) 대상 환자


알피의 대상 환자는 ‘응급실에 내원한 중증 이상의 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증 이하 환자는 응급실에서 심전도를 찍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별은 굳이 남녀를 가릴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령대는 아무래도 심혈관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은 5~60대 이상입니다.



(3) 대상 Payer 


미국의 주요 보험 가운데²에선 메디케어(Medicare)입니다. 심혈관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의 다수는 65세 이상인데, 메디케어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방 정부 보험이기 때문입니다.


2) 미국의 주요 의료 보험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방 정부 보험인 메디케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주(State) 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 및 고용주(Employer)를 기반으로 한 사보험이 있습니다. 사보험은 다시 보험 회사가 보험에 따르는 위험 부담을 지는 Fully-insured와 고용주가 위험 부담을 지는 Self-insured로 구분됩니다. 이외에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한 TRICARE, 보훈 의료 시스템인 VA 등이 있습니다.



(4) 기존 Clinical workflow와 알피 도입 후 변화


알피와 심전도 관련 기존 Clinical workflow는 이렇습니다.


‘응급실에 환자가 온다’ → ‘환자가 경증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 심전도를 찍는다’ →  ‘응급실 의사가 심전도를 확인한다’ → ‘추가로 응급 혈액 검사 결과(e.g. CK-MB, Troponin I, BNP, D-dimer 등)을 확인한다’


해당 Clinical workflow는 알피 도입 후 다음처럼 바뀔 것입니다.


‘심전도를 찍으면서 혈액 검사를 실시한다’ → ‘응급실 의사가 알피로 심전도를 분석한다’ → ‘분석 결과 자체만 가지고 (혹은 혈액 검사 결과와 함께 검토해서) 다음 진단 방법을 결정한다’ → ‘응급질환의 진단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며 그 결과 환자의 치료 결과가 좋아진다’


여기서 핵심은 알피 도입의 결과로 “환자의 치료 결과가 개선됐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만약 혈액 검사 결과가 매우 빠르게 결과가 나오고 확진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면 알피의 가치는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혈액 검사는 그 특성상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얻는 데에 나름의 한계를 지니며 알피는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Clinical workflow를 고려할 땐 신기술이 업무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신제품이 쓰이는 환경에 따라 제품 도입으로 인해 기존에 익숙한 workflow가 크게 변한다면, 의사나 병원은 제품 도입을 꺼릴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검사를 도입하는 경우엔 workflow가 크게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더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피가 도입될 환경은 어떨까요? 알피를 쓰게 될 응급실에선 응급 환자의 진단 분류를 위해 심전도를 포함한 각종 검사를 이미 실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피를 도입하더라도 의사나 병원이 기존 workflow를 변경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³


3) 새로운 검사가 업무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는 사례로 ‘IDx-DR’이 있습니다. IDx-DR은 망막 사진을 분석해서 당뇨성 망막병증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선별해주는 인공지능입니다. 평소에 내분비내과 의사 혹은 일반의에게 진료받던 당뇨병 환자들이 1년에 한번 안과에 가서 망막 사진을 찍습니다. 환자들이 당뇨병약을 타기 위해서 내과 외래는 자주 방문하는 반면, 진료가 필요해도 1년에 한번 안과에 가는 건 번거로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IDx-DR을 내과 외래에 설치한다면 평소 당뇨약을 타러 내과 외래에 방문하는 환자들이 매년 망막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과 외래는 보통 망막 촬영기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과 외래에 설치한다면 분명 환자는 좋겠죠. 하지만 의료 보험 수가가 충분히 높지 않다면 아무리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내과 의사는 설치를 망설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의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면 신기술의 도입이 수월하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상황이라면 도입이 다소 험난할 수 있습니다.



(5) 기존/경쟁 기술과의 차별점


같은 맥락에서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기존 Clinical workflow에 새로운 것을 추가하느냐 아니면 기존 기술 일부를 대체하느냐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알피의 정확도가 높아진다면, 알피가 심부전 진단에 이용되는 BNP나 폐색전 진단에 이용되는 D-dimer등의 혈액검사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심근 경색의 경우 심전도 및 혈액 검사 결과만 가지고 그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순환기내과 전문의를 호출하게 됩니다. 폐색전의 경우 CT까지 찍고 나서 해당과 전문의를 호출합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의료 환경을 생각한다면 업계로부터 ‘표준’이라고 인정받는 검사는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제품은 유사한 기존 제품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보다 유사한 제품이 없는 환경에 새로 도입되거나 기존 제품을 보완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유사한 다른 기술과의 비교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앞서 살펴본 Clinical workflow의 변화에서 우리 제품이 기존 제품을 대체하려고 하는 경우 기존 제품 대비 경쟁력도 검토해야 합니다. 상술했듯이 보수적인 의료 업계는 신제품이 기존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지 않는 한 기존 제품을 사용하려는 관성이 강합니다.




4. TPP로 업무하기


여기까지 알피 사례를 통해 TPP를 구상해봤습니다. 다음 3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알피(ARPI)는 65세 이상의 메디케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심전도 기반 인공지능 환자 구분 시스템입니다. 환자가 심혈관 질환 관련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찍은 심전도를 분석해서 다른 검사 결과와 함께 응급실 의사가 종합해서 어떤 응급 질환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판단하도록 도움으로써 응급진단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환자의 치료 결과를 향상시켜주고자 합니다. FDA 허가는 510(k)로 받을 예정입니다.”


이렇게 설정된 TPP는 업무 효율화로 이어집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경우 임상 시험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TPP를 기반으로 알피의 미국 임상 시험을 구상해보겠습니다.


우선 시험 대상은 65세 이상의 메디케어 가입자입니다. 시험 장소는 응급실입니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대학병원에서 하는 게 나을지, 지역 2차 병원에서 하는 게 나을지도 고민해볼까요? 설정된 시험 대상(심혈관 질환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메디케어 가입자)과 시장(미국 의료 시스템)을 고려하면 이 환자들이 주로 내원하는 곳은 대학병원 보다 지역 2차 병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가급적 지역 2차 병원에서 임상 시험을 하는게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타깃 환자군을 최대한 많이 포함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긴 글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뻔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장황해진 건, 초기 스타트업 중 전략을 뭉뚱그려 제시하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목표, 정확히는 제품의 최종적인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합니다. 동시에 내가 내리는 의사 결정이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이 글이 스타트업의 전략적 사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카카오벤처스 김치원(Ryan) 디지털헬스케어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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