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 Venturer At Port (VAP) 1기 회고 (Fin.)
안녕하세요. 샌프란과 서울에서 정우영 님과 북미 무역 관련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예겸입니다. 카카오벤처스에서 Venturer At Port (i.e. Entrepreneur In Residence)로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고, 또 다음 2기를 모집할 겸 겸사겸사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 1편 보러가기 카카오벤처스에서 VAP(밥?)으로 일해봤습니다
▶ 2편 보러가기 B2B SaaS 플레이북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 씬에 들어오고 나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미래를 정말 알 수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길이 정말 없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희가 이전에 해왔던 방식대로 B2B SaaS 창업을 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자신감이 정말 많이 흔들렸던 것 같고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두고 보니 심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는데요, 큰 축에서 3개 적어볼까 합니다.
지난 10년간 제가 주로 해왔던 소프트웨어는 주로 사용자에게 딜리버리 되는 데까지 3~6개월이 걸리지 않는 제품들이다 보니, 앞으로도 단기 개발로 시장에 출시하는 소프트웨어가 앞으로도 VC와 성격이 맞는 제품들일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물론 초기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여전히 VC가 대부분이겠지만, Web 2.0 또는 소프트웨어 개발 자체가 R&D로 평가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로 평가받던 세월이 앞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AI 또는 딥테크 서비스가 아닌 이상 서비스 형태를 많이 띠게 될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현금흐름과 BEP에 큰 노력이 집중될 텐데요. 그렇게 되었을 때 회사에 필요한 자금 조달 방법과 엑싯 플랜이 달라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제가 기억하는 소프트웨어 IPO가 BEP를 넘긴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억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계좌에 돈을 빨리 쌓아가면서 성장도 빨리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불가능한 케이스이고, 그렇기 때문에 Rule of 40이라는 메트릭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저희는 즉각적인 하이 스케일 기회가 있는 유스케이스가 포착되거나 또는 업계에서 3-5년 뒤에 반드시 필요할 R&D 기회를 포착할 때까지 현금흐름을 만들고, 그러한 기회가 일상에서 손에 잡힐 수 있는 인프라와 위치를 굳히는 데 우선 팀으로서 저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겠다는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서른 중반이면 (필자는 서른다섯입니다) 외길 커리어를 쌓아온 분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점프가 다가오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했던 곳에서는 서른 중반은 MD (Managing Director)가 되거나, GP (General Partner) 등으로 등판해야 하는 시기인데요. MD나 GP가 된다는 건 그만큼 그간 축적한 것들을 토대로 나의 이름을 단 포트폴리오로 정말 유의미한 결과를 내거나 큰일을 도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을 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비록 제가 일찌감치 스타트업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개인적인 점검을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몸담아 왔는데요, 비록 직급은 없지만 앞으로는 10년간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매우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치열한 스타트업계에서 10년 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내렸던 창업이나 초기 팀에 합류했던 결정들을 되새김질해 보면 최대한 빨리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임팩트를 더 빠르게 현실화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더 빨리 시작해서 더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걸 위해 필요한 준비는 무엇이고 어떻게 누구와 실행해야 할까 이러한 생각들이 주축을 이뤘던 것 같습니다. 지금 고민의 주축은 아무래도 10년 뒤에도 흔들림이 없으려면, 어떤 결과물들을 복리로 쌓아가면서 10년을 보내야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비 창업가분들은 어떻게 고민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스타트업계에 10년 있으면서 감사하게 배워가고 있는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종류의 여정을 제가 싫어하고, 잘 감내하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지원정대를 동경의 눈길로 심심치않게 다시 보지만 그같은 여정을 직접 하고 싶지는 않은 것과 비슷하달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나는 과연 글로벌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있겠습니다. 망고플레이트처럼 한국에 집중된 시기도 있었고 센드버드처럼 해외에 집중했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개인적인 소회는 우리가 우리여서 유리한 싸움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힘든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기보다는 F1에 비유하자면 P20보다는 P1에서 시작하기 유리한 레이스를 찾고 싶다는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글로벌 진출이 다 그런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예상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고민이 항상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여정과 전투를 이겨냈을 때의 결과물이나 성취감이 정말 대단하겠지만 반대로 내가 나여서 더 이기기 쉬운 여정과 전투는 없을까요.
또 한 가지 새로 창업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스스로 실망스러웠던 점은 의도적으로 복리 이자를 쌓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가 쌓였지만, 자연스러운 정도의 축적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태까지 쌓은 것을 바탕으로 정말 큰 스윙을 날릴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머리를 게으르게 사용했다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위치 선정 또한 더 유리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자는 것은 기술이나 어떠한 개인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더 궁금한 것은 제가 그간 해온 일들과, 쌓아온 관계들이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해온 제 태생과 인생 그 자체가 저를 더 유리한 위치에 놓아줄 수 있는 전장은 어디고, 그 여정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요즘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혹시 이러한 포지셔닝에 대해서 창업을 준비하셨을 때 고민하셨던 노하우가 있다면 꼭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VAP 2기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조금 더 정보를 전달하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KV VAP(EIR)를 하는 동안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패밀리사와 KV를 돕는 것이고 둘째는 창업을 준비하는 것인데요, 중간에 생긴 목표중에 하나는 더 훌륭한 예비 창업 팀을 만나서 바톤을 꼭 넘기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도 다음 VAP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을 올리자면, 저희는 1기인 만큼 부족한 점이 많은 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좋은 분들을 모셔서 패밀리사와 KV에, 그리고 KV를 활용한 더 좋은 창업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내부적으로는 패밀리사의 고민에 세컨브레인이 되어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KV에는 창업자의 시각으로서 내부에서의 세컨브레인이 되어주시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주로 수면위에 떠오르고 꼭 도움이 필요한지는 위에 많이 적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KV 또는 패밀리사 내부 일에 얼마나 시간이 많이 들어가나요
정말 하시기 나름일 것 같습니다만 많이 들어가는 주에는 40시간, 적게 들어가는 주에는 3시간도 채 안 들어간 주도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점검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KV VAP는 venture studio가 아닙니다
제곧내. 리서치와 창업 준비는 오로지 VAP가 진행하는 아젠다입니다. KV를 활용하는 것도 VAP가 조율하는 구조입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데에는 어떤 도움이 되나요
KV VAP를 예비 창업자 입장에서 정리해 보자면,
1) 단기간이지만 그래도 생각을 주기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정당화 된다는 것
2) 패밀리사들이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전 결정들을 복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3) 궁금한 내용이나 만나고 싶은 곳들이 있다면 KV 내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4) 심적으로 든든하다는 것. KV에서 VAP를 내부 일원으로 대해주시기 때문에 (내부 미팅, 회식, 워크숍 등) 예비 창업자가 가장 외로울 수 있는 시기에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재차 강조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 VAP를 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VAP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창업은 여차여차 했겠지만 초기에 정말 큰 실수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좋지 않은 결정들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 VAP가 되어주세요
가장 이상적인 후보군은 창업 (초기 팀이어도 됩니다), 스케일링 (커야 합니다), 그리고 엑싯 (크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스타트업의 한 사이클을 경험해 보신 예비창업자분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yk@kakao.vc로 연락해 주셔도 좋고, 제 KV 이메일이 언제 만료될지 모르기 때문에 링크드인으로 연락해 주셔도 좋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KV VAP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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