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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벤처스 Mar 14. 2024

B2B SaaS 플레이북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KV Venturer At Port (VAP) 1기 회고 (2)


안녕하세요. 샌프란과 서울에서 정우영 님과 북미 무역 관련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예겸입니다. 카카오벤처스에서 Venturer At Port (i.e. Entrepreneur In Residence)로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고, 또 다음 2기를 모집할 겸 겸사겸사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 1편 보러가기 카카오벤처스에서 VAP(밥?)으로 일해봤습니다

▶ 3편 보러가기 n번째 창업을 앞두고 이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지난 7년간 B2B SaaS에 집중해 왔다 보니, VAP기간 동안의 B2B SaaS 회사들과의 논의들은 개인적으로 깊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오늘날 AI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관심이 옮겨가면서 B2B SaaS라는 카테고리는 지금까지는 AI로 실현된 득보다는 실이 많은 상황인데요. 더욱 자세한 얘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B2B SaaS 플레이북의 변화


2021년도까지만 해도 YC를 주축으로 만들어져가던 클라우드 기반 SaaS 제품과 회사를 만드는 플레이북에는 큰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풀어서 설명해 보면 하나의 날카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기능을, 높은 그로스마진을 목표로 초기 고객들과 PoC를 통해서 피쳐를 쌓아나가고, 엔터프라이즈 기능들이나 기술 지원 패키지 등을 추가하고, 조금 더 긴 계약 기간과 조금 더 큰 계약 규모를 유치해 (반대 선상에는 self-service를 통해 더 많은 고객 유치) TTDDD를 향해 나아가는 많은 이들의 기반이 된 exit까지의 방정식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B2B SaaS에서 이러한 성공 방정식이 가능했던 이유가 크게 몇 가지에 기인했다고 느껴왔었는데요. 


1) 클라이언트와 서버 개발자 수급의 어려움이 고객 리텐션이 상대적으로 쉬운 소프트웨어 아웃소싱으로 이루어지고, 2)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고, 3) Cloud SaaS 카테고리가 높은 EV to ARR 멀티플로 상향 조정되고 있었고 4) 고객사들이 SaaS를 내부 개발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용하는 것마저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기에 특정 분야나 기능들의 전문가들이 외부에서 더욱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심심치 않게 존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22-23년도에 오면서 B2B SaaS가 유치하던 높은 멀티플은 LLM으로 옮겨가고, 많은 고객사들에는 이제 내부 개발팀은 물론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 비용 감축에 시달려 기존의 성공방정식에 필요한 기반 요소들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 사례로 벤치마킹 되던 21-22에 상장한 SaaS 회사들도 아직까지 밸류에이션 회복을 하지 못하고,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의 SaaS 스타트업의 앞날이 (다른 말로는 exit 방법과 가능성이) 불투명해졌습니다. 




B2B SaaS 밸류에이션과 자사의 포지셔닝


Publiccomps.com을 통해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 회사들을 샘플링해보았습니다. 카테고리는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해 왔던 제품들이나, 상대적으로 잘 아는 회사들을 샘플링했습니다 (데이터독, 유니티, 젠데스크, 아고라, 앰플리튜드, 박스, 수모로직, 깃랩, 트윌리오, 브레이즈 등).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다 익숙하신 제품과 회사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위 차트는 가장 최신 쿼터에 기반한 데이터이고 (2023 Q4/Q3, 밸류는 어제 기준), 하위 차트는 8쿼터 이전입니다(2021 Q4/Q3). 자세한 수치를 보시지 않아도 설명이 쉬운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회복세가 있다고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2022년도 이전에 많은 SaaS 창업자들이 벤치마킹 하던 엑싯을 이뤘던 회사들의 메트릭과 밸류가 대부분 회복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EV/NTM revenue 멀티플 미디언이 5가 안된다는 것은 정말 큰 경종을 울리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쉽게 말하면 불과 몇 년 전 기준으로 상장을 노릴 만큼 의미 있는 매출에 도달해도 회사 가치가 의미가 적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V/NTM revenue



YoY revenue growth


Rule of 40 LTM FCF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

포지셔닝과 브랜딩을 검토해 보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밸류에이션이 안 좋으니 B2B SaaS를 하지 마시라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지금 SaaS를 하시면서 LLM/AI 컴포넌트를 코어에 담지 않으시기 어려울 겁니다. 그랬을 때 제품의 브랜딩과 포지셔닝에 대해서 고민해 보시는 게 생각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같은 결과를 내는 제품과 회사인데 모두에게 인정받는 값이 크게 다를 수 있으니까요. AI가 코어가 아닌 SaaS로 출발했지만 이제 제품에 AI가 많이 녹아들어 가게 된다면, 우리 회사와 제품은 기존의 SaaS와 어떻게 다른 카테고리일지 고민하시는 만큼 포지셔닝과 브랜딩 또한 다시 고민해 보셨을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2016년쯤을 돌이켜보면 당시 SaaS(구체적으로는 API) 회사들이 카테고리와 포지셔닝에 신경을 쓰던 부분은 SI 회사와의 차별점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SaaS에 익숙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설명해 드리자면 SaaS 회사는 회사의 크기가 커질수록 서비스 매출이 상당폭 상승합니다. 대개는 SI(또는 프로페셔널 서비스)가 동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내부적으로도 한 번쯤은 엔지니어링팀에서 나온 얘기일 것 같아요. ‘우리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지 대형 고객사의 SI 회사인지'. 당시에 우리는 SaaS 회사라는 설명에 열을 올린 이유는 냉정하게 말해서 SI 회사는 밸류에이션이 너무 낮고 벤처투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SI 회사들이 본인들의 소프트웨어나 SaaS 제품을 만들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SI 회사들도 당시에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가 내부에 다수 존재했고 시장에 나오는 SaaS 제품들의 개발 문서를 검토하면서 우리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하지 않았을 리가 있을까요. 결국에는 경영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 제품의 포지셔닝과 브랜딩 그리고 내부 프랙티스 자체가 한번 잡혀 버리면 그만큼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혹시 밸류에이션이 돌아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 마지않는 일입니다. 마켓은 사이클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티플이 돌아오는 부분을 어느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연관 카테고리들이 지속적으로 멀티플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은 맞지만 2010년 때부터 진행된 피크 밸류에이션 토픽들의 순환이 mobile > cloud infra > B2B SaaS > security > AI에 와있는 지금, 다시 한번 피크 멀티플이 B2B SaaS로 자연스럽게 이관될 확률은 매우 적을 것 같습니다.


플레이북 변화가 채용에 주는 영향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B2B SaaS 플레이북 변화가 팀에 주는 가장 큰 영향은 2022년 이후에 상당한 로드맵 수정을 하지 않으셨으면 높은 확률로 유의미한 엑싯이 있기 힘들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탈렌트 리크루팅과 리텐션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돈 얘기가 주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직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일원들이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합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엑싯의 가능성과 그 리턴을 기대하고 합류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리고 그 엑싯으로 가는 B2B SaaS 플레이북이 무너진 지금, 계획 수정이 없이는 함께하는 많은 분의 시간을 값지게 만들 수 없습니다. 


2022년 이전에 세워진 전략으로 B2B SaaS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많은 인원이 빅테크를 뒤로하고 초기 멤버로 합류하는데 더는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물론 배움이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달린 것이고 엑싯은 마켓과 회사에 달린 것이죠. 마켓이 보내고 있는 시그널이 상당히 명확한 만큼 그에 맞춰서 회사가 전략을 수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엑싯이라는 단어를 IPO나 M&A에 한정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양질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상당히 높은 자유도로 투자자들과 내부 구성원들에게 엑싯 기회를 제공하실 수 있으니 폭넓게 고민하셔도 좋지 않을까 첨언을 드립니다.


B2B 소프트웨어에 가깝지만, 플레이북 변화에 해당이 없는 영역


B2B SaaS를 콕 짚어서 얘기한 이유는 많은 경우 SaaS 회사들은 소수 정예로, 단기간 내에 제품을 개발해서 곧바로 마켓에 적용해 가면서 고객을 유치하고, 추가 개발을 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알음알음 만들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장기간 R&D와 개발 그리고 초도 대량 투자가 있어야 하는 제품은 상당히 등한시되어 왔습니다. 물론 Figma, Hex 같은 예외도 있지만 고도의 R&D와 개발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제품들은 대부분의 창업자가 현실적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그만한 투자를 끌어내는 데 필요한 팀 또한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러한 영역은 딥테크 창업의 영역이고 B2B SaaS의 영역에서 자주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지금 만들어가고 계신 제품이 3-5년 뒤의 타이밍을 보고 시작하신 제품이라면 (예를 들어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라던가) 위에 제가 말씀드린 플레이북의 변화에 관한 내용은 해당 사항이 없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다음 글 소개


저와 정우영 님은 2016년부터 B2B SaaS 관련 일을 해왔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B2B SaaS로 귀결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리서치 기간을 마련한 이유는 이전과 지금을 바탕만으로 창업하기보다는 앞으로를 위한 창업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감사하게도 KV에서 VAP로 있는 동안 좋은 환경에서 조금 더 명료하게 생각하고 (clear thinking), 좋은 (희망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저희처럼 새로이 창업을 준비 중이시거나 전환점을 맞이하신 분들께 조금 더 적합할 수 있는 저희의 개인적인 고민 들을 나눠보고, 그리고 끝으로 VAP 2기가 관심 있으신 분들께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 이예겸(YK) VAP



▼ KV VAP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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