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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1. 2016

혜화, 동

무너져버린 사랑의 기억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착

영화 혜화, 동

이 영화는 한 여자가 버려진 개(유기견)를 구조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 여자의 이름은 혜화. 그녀는 동물 병원에서 일을 한다. 동물 병원 원장은 사별을 하고 혼자 남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다. 원장의 아들은 혜화를 각별히 따른다. 그녀에게 엄마라고 부를 정도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 사별을 한 원장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동물 병원에서 일을 하는 혜화에게 도움을 청한다. 혜화는 기꺼이 원장의 아들을 돌본다.
 
그러니, 원장의 아들이 헤화의 가슴을 서슴없이 만지고 혜화를 유난히 따르며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혜화가, 원장의 아들에게 각별한 정을 느끼는 것은 그녀의 과거와 관련이 있다.


2. 잊혀진 아이, 잃어버린 아이

영화 혜화, 동

'바람도 지난 바람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그녀에게 지나간 바람은 너무나 아프게 그녀를 할퀴고 간 것이어서 그녀는 그 과거를 애써 외면한 채 살아왔다. 유기견을 돌보고, 엄마 없는 어린 아이를 돌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서 눈을 돌린 채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이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것이던가?  세상 그 누구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녀의 과거는 그녀를 때때로 힘들게 한다. 그녀가 버려진 개들을 따스하게 품어 안은 것도,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돌본 것도 사실은 다 과거에 겪었던 일 때문이다.
 
과거,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다. 고등학교 때였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속된 말로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 친구를 믿었고, 자기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낳아서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도 그만뒀다. 자의든 타의든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다. 배가 불러오면 나쁜 소문이 날 테고, 그것은 그녀에게도 배 속의 아이에게도 이롭지 않은 일일 것임은 분명하니까.


영화 혜화, 동

그러나 아직 신체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덜 자란 청춘남녀의 설익은 사랑은, 새 생명을  잉태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녀는 결국 아이를 혼자 낳아 입양을 보낼 결심을 한다. 남자 친구 어머니가 피아노를 공부하는 남자 친구를 캐나다에 유학 보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자 도망치려는 남자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르려고 생각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 한켠에서는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노모는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사이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세상에 내놓은 아이는 죽어 버리고 만다.
 
그녀는 아이를 그렇게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워왔던 사랑도 끝이 난다. 그녀는 그렇게 아이를 잃어버리고, 잊었다. 그런 그녀 앞에 캐나다로 유학을 갔던 남자 친구가 돌아온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그리고 그는 평온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을 헤집는다. "우리 아이 살아있어."
 
잊혀졌던, 아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녀의 잊고 싶었던 과거도 다시 떠오른다.



3.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고 싶은 욕망

영화 혜화, 동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고 싶은 그녀의 바람은 그러나 실현될 수도 실현되지도 못할 것이었다. 남자 친구는 잘못된 정보를 갖고 와서 그녀에게 아이가 살아 있다고 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고 믿었던 그 아이가, 사실은 그때 정말 죽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됐을 뿐이었다.
 
남자 친구는 아이가 살아 있다고 말함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용서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내미는 손을 선뜻 잡을 수 없다. 그 손을 잡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이다. 죽은 아이는 되돌아오지 않고, 그때 떠나버린 감정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는 잊고 싶은 과거가 됐을 뿐이다.
 
남자 친구는 아이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제대로 시작해보지 못한 탓이다. 아이를 제대로 사랑해주지도, 사랑할 시간도,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 혜화, 동

혜화는 남자 친구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관계가 엉망이 된 것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녀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사랑이 있던 자리는 영화에 등장하는 혜화의 예전 집이 폐허로 변해버린 것처럼 아이가 머물다 간 혜화의 육체처럼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혜화는 자신이 버림 받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혜화의 노모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혜화의 아버지가 혜화를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사실을. 그래서 노모가 치매에 걸려 "그 숭악(흉악)스러운 것이 너무 울어서 내가 입을 막아버렸다"고 말해도 놀라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버린 셈이 됐다. 사실 그녀가 미워했던 것은 남자 친구 한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덜컥 가지고, 낳아서 결국 죽게 만든 자기 자신을.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 상처, 쓰라린 눈물들을 제 안에 담은 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우리 옆에 - 아니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그늘진 어딘가에 혜화는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삶에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며 그렇게 삶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그녀만의 것이다. 그녀가 짊어진 무게 위에 모진 말들까지 구태여 보탤 필요는 없다.
 
남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엔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는 쉬이 가늠하기 어려우며, 삶에 대해 말하기엔 우리는 삶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혜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도, 어쭙잖은 충고도 격려도 아니다. 어쩌면 그녀가 선택한 일들에 대한 존중, 그 삶에 대한 존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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