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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26. 2016

시를 쓴다는 것

감독 이창동

출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김용택 시인


시 쓰기란 무엇일까?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다름 아니다.
 
시를 쓰려면 우선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감각이 그 대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자는 손자인 종욱이를 돌보며 살아간다. 딸은 이혼했고 아들을 어머니인 미자에게 맡긴 채 부산에 살고 있다. 가끔 통화는 하지만 어린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오롯이 미자의 몫이다. 잠시 맡겨놓았다고는 하지만 실상 종욱이의 어머니는 종욱이를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영화 시

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어느날 어린 여중생의 시체가 물 위에 떠오른다. 자살한 것이다. 그 소녀의 죽음에 손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미자는 손자와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손자는 회피한다. 미자는 손자를 나무라지 못한다. 그저 왜 그랬냐고 손자를 두어 대 때린 게 다였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툭툭 끊어져 있는 관계의 줄을 잇기 위해 미자는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시를 쓴다. 그녀는 가끔 사물들의 이름을 잃어버린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한다고 나을 수도 없다는 걸 아는 미자는 보호자를 부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보호자가 없다.
 

영화 시

여중생이 자살한 그 강에 앉아 미자는 여느날 처럼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메모하려 한다. 그때 툭툭 눈물처럼 빗방울이 떨어진다. 수첩은 흠뻑 젖어버리고, 미자는 망연자실하게 앉아 그 비를 맞는다. 그리고 다시 파출부로 일하는 집을 버스를 타고 찾아간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뛰어 나온 바로 그 집이다. 미자는 욕실 문을 잠그고, 기계적으로 닦던 할아버지의 몸을 부드럽게 닦아준다.그리고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준다. 죽기 전에 딱 한번만 해봤으면 좋겠다던 소원을. 좁은 욕조 안에서 미자는 할아버지와 느리게 정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다. 동네에서 멋쟁이 할머니로 통하는 미자는 시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지만, 그녀의 삶은 '시'와는 거리가 멀다.
 
시 속으로 도망치려던 그녀는 시 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시 쓰는 것을 피하고 싶지만 그녀는 그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모른척 할 수가 없다. 다들 모른척 하고 그 아이의 부모까지 3천만원에 딸의 죽음을 잊으려 하는 것을 미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럽다. 그러나 시 쓰기를 통해 미자는 그 고통들을 자기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진다.
 

영화 시


그 시는 여중생의 죽음을, 너무 이른 나이에 제대로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져버린 어린 꽃송이 같은 여중생의 삶을 위로하는 시였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뜨거운 불덩이' 같은 사랑도 될 수 있고, 따뜻한 난로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도 힘에 부치고 그 일에 지쳐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신문사 기자는 어린 여중생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제 밥벌이로 삼아 뒤를 캐내기 바쁘고, 여중생을 성폭행한 또래의 남자 아이를 둔 부모들 역시 그 사건을 돈으로 무마하기에 급급하다. 미자는 그 속에서 시를 찾는다. 홀로 강물에 뛰어든 어린 여중생을 위로할 시를. 손자를 위해, 파출부로 일을 나가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지난번에 가졌던 정사를 핑계로 5백만원을 요구하고, 그 돈을 받아 건넨 뒤에 미자는 모든 것이 끝나리라 믿었다. 그러나 손자는 냄새를 맡은 경찰에 의해 잡혀갔고, 미자는 아무렇지 않은듯 배드민턴을 치고 딸에게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남긴 뒤 사라진다.
 
아마 그녀는 먼저 간 여중생의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었고, 세상이 시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어린 여중생과 미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사실 그것은 '자살'이라기 보다는 '타살'에 가까웠다. 자녀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버려진 노인(미자)과 세상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소녀(희진)의 삶은 누군가에게 버려진, 무관심하게 내쳐진 이들의 울타리 밖의 삶이라는 점에서 참 닮아 있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자가 시 쓰기 강좌 시간에 내 인생에 아름다운 순간을 말할 때였다. 그녀는 언니가 예쁜 옷을 입혀주고, 미자야 이리 와...하고 부를 때 내가 예쁜 사람이구나.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좋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는다.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지만 미자도 어린시절 그 누군가에게는 아주 예쁘고 귀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미자가 그 얘기를 하며 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손자를 내버리듯 자신에게 맡기고 간 딸과, 파출부로 일하며 홀로 손자를 힘들게 키우지만 아무도 그녀의 삶을 들여다봐주지 않는다. 그녀는 홀로 아프고 홀로 힘들다. 손자도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가족이라기보다는 타인에 가까운 관계의 손자와 할머니는 끝내 여중생의 죽음을 계기로 돌아선다.
 
미자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미자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조차 없이 바쁘게 살았던 미자는 시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쁨을 맛보기를 원했는지 깨닫는다. 자신은 뜨겁게 세상을 사랑했지만, 세상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다는 노년의 외로움이 아마도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녀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유서 같은 한 편의 시였다. 그 시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그것이 너무나도 아픈 사랑의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었던, 애달픈 삶의 노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네스의 노래

그 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영화 속에서 주인공 미자가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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