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by 기록 생활자


지은이 요시모토 바나나

옮긴이 김난주

펴낸 곳 민음사


예쁜 책 표지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 어촌 마을에서 작은 빙수 가게를 하는 여자가 주인공이어서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다. 디자인이 예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띠지와 책 뒤표지 그림이 연결되어 그려져 있는 부분을 보고 책 표지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였구나 생각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일본 영화도 있다.


영화 바다의 뚜껑

영화는 원작대로라면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이 묻어 있는 예쁜 영화일 것 같다. 독특한 제목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으로 해외에서 자신이 살던 고향에 빙수 가게를 낸 외국 여성의 빙수를 맛본 후 자신도 어릴 때 살던 마을로 돌아와 빙수 가게를 차린다.

그리고 친구의 딸인 하지메라는 여성이 할머니를 잃고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니 잠깐 같이 지내달라는 엄마의 부탁으로 여름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도 생기게 되고, 하지메의 상처도 주인공으로 인해 치유가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하지메의 마음이었다. 하지메는 어릴 때 집에 불이 났을 때 자신을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려낸 외할머니와 각별하게 지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실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런 부분은 우리 할머니와도 닮은 부분이 있어서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친할머니는 지병으로 작년 4월에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 사촌 오빠를 업고 뛰어 살려낸 적이 있으시다. 고종사촌 오빠는 슈퍼맨 놀이를 한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할머니가 그런 오빠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셨다고 한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오빠는 그 사고로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지만. 손자를 살려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맨발로 뛰어 병원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지극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남기신 유산 때문에 집안이 꽤 시끄러웠다. 돈이라는 게 뭔지 한참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라는 건 역시 많으면 편리하긴 해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아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인 것이 돈인 것 같다. 형제들 간에 다투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그때 굉장히 슬펐기 때문에 하지메의 마음에 (비록 소설 속 인물이라고는 하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 남기신 물건을 하지메처럼 나도 몇 가지 들고 왔다.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나서 잠깐 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어쩐지 할머니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인연에 관한 이야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는 꼭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릴 때는 그런 것이 너무 무거워 보여 약간 싫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러운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죽음을 떼어 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바다의 뚜껑이라는 건 결국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여름을 마무리하는, '닫는다'라는 의미의 뚜껑이었다.

하지만 큰 사건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빙수 가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 (손님과의 이야기라던가)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약간 아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느낌,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느낌도 있었고 내용이 좋았기 때문에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물이 되어 달콤하게 사르르 녹아 배 속으로 사라지는 빙수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갈무리 해 두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은 책이었다.


얼음은 녹아 금방 없어지는 것이라, 나는 늘 아름다운 한때를 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의 꿈. 그것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어린아이도 나이 지긋한 어른도 다들 신기해해하는, 이내 사라지는 비눗방울 같은 한때였다.

그 느낌을 정말 좋아했다. 그러니 그것을 잡아 조금이라도 어디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얼음은 엷고도 달콤하게 사라진다. 그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다, 그저 단순히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 자잘하고 하얀 안개 같던 것이 점차 덩어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물이 된다. 모두 달콤하게 배로 들어간다. 그런 느낌. (100쪽) [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헬조선에는 정신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