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물든다는 것, 물들인다는 것

by 기록 생활자

지은이 이병률

펴낸 곳


시인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이다. 이 책은 마트 안에 있는 서점에 갔다가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어서 냉큼 집어왔던 책이다. (왠지 득템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동서식품의 사보에서였다. 지금은 받아보지 않지만, 예전엔 동서식품 사보를 우편으로 받아봤었는데, 거기에 이병률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인터뷰의 내용도 그랬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글귀였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 中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색깔을 닮아가고 싶어하고 그 색깔로 자신의 마음을 물들이고 싶어하는 저자의 간절함, 또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섞이고 닿기를 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여행 산문집이지만, 여행에 대한 기록보다는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는 책이다. 여행을 가서 관광지나 둘러보기 바빴던 내 자신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 여행에서 받았던 느낌, 여행 내내 했던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여행기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여행 산문집이라 여행지의 사진들도 다채롭게 실려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단락은 나뉘어져 있지만 페이지나 목차가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읽고 싶은 페이지, 아무데나 펼쳐서 자유롭게 여행하듯 읽는 것도 이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읽으며 그의 여행은 어쩌면 마음에 묻은 누군가를 지우기 위해, 떨쳐 내기 위해 떠난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공기, 낯선 바람,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보내는 조금은 낯선 시간들은 내가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고,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예민한 감성이 스며들어 있는 책 같았다. 감각적이되 날카롭지 않고 말랑말랑하며 따뜻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당신이 좋아요'라고 몇 번을 되뇌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다. 적어도 사람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한 사람을 두고 상상만으로 그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아무리 예상을 해봐도 그 사람의 첫 장을 넘기지 않는다면 비밀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1# 심장이 시켰다 中

나는 너를 반만 신뢰하겠다.
네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너를 절반만 떼어내겠다.
네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3# 中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괜히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40# 내가 타지 않아도 되는 비행기의 시간표들 中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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