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어떤 만남의 기록

by 기록 생활자

지은이 마종기, 루시드 폴

펴낸 곳 웅진지식하우스


애써 배우고 당해내고 살아남으려 하던 습관을 버리다 보면 지금은 뭔가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 '내상'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2008.10.2 thu.23:50 루시드 폴이 마종기 시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오래전에 한 패션지에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대화를 나눈 것이 실렸었다. 그걸 읽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때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내내 생각만 하다가 못했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 읽어야지 했던 책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어딘가에서 발견하게 되어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책이나 영화나 뭐 그런식으로 다시 접하게 된 것들이 내겐 많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찾고 있던 책이 내가 자주 가는 그 서점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읽을거리를 고르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이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책방 주인이 내게 말했다.

"좋은 책을 고르셨네요."

그 말을 듣고나자 이 책을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래 사려던 책이 없어서 고른 책이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찾던 책이 그 서점에 없었던 것이 이 책과 내가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그런식으로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생각되었다.

이날 사려고 했던 책은 이후에 다시 책 구경 하려고 들른 다른 서점에서 아는 사람에게 선물 받았다. 그 서점에도 그 책은 한 권 밖에 없었다. (큰 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두 사람이 메일을 주고 받은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유학길에 올라 팬이 선물해준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읽고 힘든 유학생활에 힘을 얻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그의 시로 위로를 받았던 루시드 폴은 마종기 시인의 팬이 되었고, 마종기 시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에 마종기 시인이 답을 하면서 두 사람의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알려지게 되었다.

마종기 시인은 내게도 특별한 시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 '우화의 강'을 친구가 되고 싶었던 누군가에게 들려주며 내 마음을 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서먹한 사이였던 그 사람과 나는 그 시를 내가 편지에 적어 전해준 이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 사람은 '우화의 강'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고,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 사람과 나는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처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좋은 친구가 되었다. 집에 놀러가서 같이 장보고 요리도 해먹을 정도로 친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그 시를 읽을 때마다 종종 그녀 생각이 난다. 내게는 사람을 만나 알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기쁘고 행복하고 좋은 일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줬던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통하는 기쁨.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마음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사람이다. 그런 인연을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처음 느꼈던 건 아름다운 책이라는 것이었다. 아름답다.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여기저기서 만져진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의 책인데 두 사람의 우정까지 느낄 수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위로 받은 느낌이었다. 루시드 폴의 팬이나, 마종기 시인의 팬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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