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
어떤 책들은 읽으면서 '어, 이 책 나만 알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하고 읽으면서 더욱 좋아하게 되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 속의 음식들이 기억의 식탁 위에 천천히 차려졌다.
파인애플 통조림, 붕어빵, 유치원에서 먹었던 카레, 어머니가 소풍날 싸 주셨던 김밥,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카스테라. 이 음식들에는 물론 이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 때문에 이 음식들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리라. 궁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잠깐 이 음식들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해보고 싶다.
파인애플 통조림
파인애플 통조림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치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며칠 고생을 했다. 나는 치과를 싫어했다. 어린이들이 늘 그렇듯 치과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며칠 뒤에 아버지가 치과에 갔다 오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치과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마취를 하지 않고 이를 뽑았다. 이후에 어른이 된 후에 그 의사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실수로 그런 것 같다'며 사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피가 엄청 났고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3일 동안 앓아 누웠다. 아버지가 옆에서 간호를 해주었다. 물수건을 머리에 얹어주었다. 이마에 손을 짚어주면서.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심통이 난 상태였고 너무 아파서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아버지가 내가 좋아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다 놓았다며 "우리 OO이, 얼른 나아서 이거 먹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파인애플 통조림은 결국 먹지 못했다.
동생들이 내가 아픈 사이에 다 먹어 치운 것이다. 하지만 그 통조림은 먹지 않았지만 먹은 것 이상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지금도 파인애플 통조림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붕어빵
나는 가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들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자이언티의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택시 드라이버였기 때문이다. 그 가사의 어떤 부분은 우리 아버지와 똑같고 내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꼭 울게 된다.
아버지는 모범 운전수였고 회사 택시를 몰다가 10년 무사고로 자격을 얻어 개인 택시를 운전하셨다. 개인 택시는 회사 택시와 달리 자기 영업이라 개인 택시하시면서부터는 더 열심히 하셨다. 아버지 얼굴 보기가 참 힘들었다. 새벽에 일찍 나가셔서 별이 뜬 한밤중에야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제비새끼처럼 아버지가 오기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곤 했다. 늘 간식을 사가지고 퇴근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항상 우리들의 간식이 들어있었다. 어느날 다른 형제들은 다 잠이 들고 나만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아버지를 늦게까지 기다렸던 것은 아버지가 운전을 하시니까 어린 마음에도 늦게까지 안 돌아오시면 걱정이 되는 게 좀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아버지는 간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지만. 아무튼 그날은 나 혼자 깨어 있었다. 아버지가 집앞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셨다. 내가 받았다.
아버지가 다른 애들은 자느냐고 물어보셨고 난 잔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그러면 몰래 잠깐 집앞 공중전화 쪽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내려갔다. 아버지 손에 간식이 들려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것도 없어 약간 실망스러웠다.
왜 내려오라고 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이거 줄려고"라고 말씀하시면서 품에서 "우리 새끼들 줄 건데 식을까봐 품에 넣어왔다"라고 하시면서 붕어빵을 봉투째 꺼내 주셨다.
너 한 개 더 먹게 해주려고 내려오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따뜻할때 먹으라고 하시면서. 나는 거기서 얼른 하나를 먹고 올라갔다. 사실 나는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형제들과 함께 뭔가를 먹으면 늘 몇 개를 못 먹었다. 그래서 내려오라고 하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입에 집어 넣고 봉지째 들고 올라갔다.
사실 그날 아버지가 품에 넣어온 그 붕어빵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그 어떤 붕어빵 보다도 맛있었고 따뜻한, 지금도 눈물이 날만큼 그리운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어서 그랬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김밥
나는 지금도 김밥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꼬다리' '꽁다리'라고 불렸던 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소풍날이면 어머니는 새벽 일찍 김밥을 싸셨다.
형제가 많았고 우리 때는 급식이 없을 때라서 형제 중 누군가 소풍을 가면 그날 도시락은 김밥이 되곤 했다. 도시락 분량에 아침으로 먹일 것까지 싸셨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김밥을 싸셔야 했는데 소풍날 귀찮아 하시면서도 열심히 김밥을 말아주셨다.
그 옆에 앉아서 꽁다리로 나온 김밥을 낼름 낼름 집어 먹는 그 재미가 쏠쏠했다. 소풍날을 김밥 때문에 기다렸을 정도로 엄마표 김밥을 사랑했다. 지금도 김밥을 참 좋아한다.
산다는 건 잘 먹는 것은 먹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소박하지만 기억 속 식탁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김밥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음식에 관한 이야기의 식탁은 소박하지만 맛깔스럽고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천천히 음미하듯 눈으로 상상으로 그 음식을 맛보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읽는 내내 참으로 행복했다.
그릇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 역시 살펴볼 수 있어 좋았고 설거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마음 깊이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통찰력에 무릎을 철썩 쳤던 대목이 있다.
사실 축제에는 주인공이 필요 없다. 모두가 다 주인공이니까.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되지. 모두가 동등해. 무엇을 감추겠어. 이것이 큰 접시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큰 접시를 둘러싸고 있는 쪽에도 규칙이 있다. 인원과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해서 자신이 덜어야 할 분량을 결정한다. 그런데 젓가락을 쥐고서 가끔 세상 이치를 잘 아는 듯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말이지, 한 명에 세 개씩이군."
너무 노골적이라서 맛도 정취도 없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모처럼 큰 접시에 가득 담았는데 그렇게 자로 잰 듯 나누다니, 너무 하잖아. (111쪽) -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中
큰 접시의 마음도 몰라주고
맞다. 큰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는 건 우리 함께 먹자는 것이다. 먹고 싶은만큼 먹자는 것이다. 눈치 보지 말고. 그런데 꼭 정확하게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어쩐지 음식도 맛이 없어진다. 저자의 통찰력에 무릎을 쳤다.
단순히 밥 한끼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밥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 시간 오고갔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누는. 밥 한끼의 기억. 먹는다는 것,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졌고 읽는 내내 그리운 그 옛날의 식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소소하지만 맛있는 한끼를 나눴던 그때로.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루를 건너가기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밥을 먹는다. 하루를 너끈히 견디고 살아가기 위해, 내일로 건너가기 위해.
하루 하루를 자기 몫의 밥 한 그릇을 삼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운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눈물나게 맛있는 이야기였고 책이었다. 이 따뜻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