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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1. 2016

곡성

뭣이 중한지 그들은 몰랐다

이 영화 속에는 '외지인'이 등장한다. 그는 베일에 싸인 인물로 곡성에서 온갖 소문을 생산하며 그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곡성이라는 영화에서 그는 이야기의 씨앗이며 이야기가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인물이다. 외지인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한일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치로 보여진다.

영화 곡성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만행들 (외지인인 일본인이 '더러운 암캐'라고 말하면서 마을 사람인 여자를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은 소문이라는 식으로 일축해버리는데 이 부분이 왜곡된 역사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고 생각된다.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 일본인의 행동은 그저 소문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그가 했던 행동들에 관한 소문은 모두 진실이었다는 점이 종구(곽도원)가 그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목격하게 되는 광경이나 일본인이 찍은 사진에서 드러난다.), 대량 학살과 생체실험, 창씨개명. 또 한국인의 정기를 끊어놓기 위해 산에 철심을 박은 행위들이 무당(황정민)이 굿을 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영화 곡성

(마을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굿을 하며 돈을 버는 황정민이 맡은 배역인 무당은 친일파를 상징하는 인물인듯하다. 왜냐하면 친일파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그 상황을 이용해 이익을 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장승을 쓰러뜨린 다음에 못 같은 것을 박는 장면이 나왔는데 장승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으로 마을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걸 쓰러뜨린 다음에 못 같은 것을 박자 외지인인 일본인은 물론 종구의 딸이 무척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친일파라는 상징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 있다. 종구가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입고 있는 중요부위만 가린 일본식 속옷 등에서 드러난다)  


그러면 '무당 일광이 일본인을 향해 살을 날릴때 왜일본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종구가 자신을 믿도록 해야만 했고, 또 친일파에게도 일본인은 그리 편한 존재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친일파 자체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익에 따라 그를 배신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종구는 그가 못을 박듯이 장승에 철심 같은 것을 박을 때 딸이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굿판을 엎어버린다.  


영화 곡성


외지인인 일본인은 일본(=악마)을 상징하고, 종구(곽도원)를 둘러싼 그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 곡성 사람들은 우리나라(조선인/종구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공권력=무능한 정부)를 상징하며, 무당 일광(황정민)은 친일파를, 종구의 곁을 맴돌던 여자 무명(천우희)은 종군위안부를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듯 하다.


일본인은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그의 겁에 질린 표정을 사진기에 담는다. 두려움에 질식 당하기 직전인 표정을. 무엇이 인간을 약하게 만드는가? 의심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게 일본인과 사제의 동굴 속에서의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곡성

무당 일광은 사람들이 죽은 이후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여기서 그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진기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담는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을 모두 목격하고 알고 있었지만 이를 묵인해오며 이익을 챙긴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곡성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라는 딸아이의 말은 일본이 과거 우리에게 저질렀던 행위들을 잊은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만들어낸 대사 같기도 하다.


한일관계 개선이란 미명 아래 너무 쉽게 종군위안부 문제를 용서하고 해결해버린 위정자들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은 우리의 영토만 침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까지도 학살하려 했다. 한국인의 정신(얼)까지 다 말살해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창씨개명과 우리나라 명산들에 말뚝을 박은 행위들이 이를 드러내준다.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한국인의 기상, 한국인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영화 곡성


그것이 종군 위안부로 상징되는 여자가 거듭 반복해 말하는 "씨를 말리려고 한다" "피를 말려 죽이려고 한다"는 말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영화 곡성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현실. (그것이 그녀가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집앞에 쳐 놓은 결계에 매달린 시들어버린 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누군가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었다면 그 꽃은 시들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집에는 그것이 다 매달려 있었다.) 두려움이 생긴 그는 무당의 말을 믿고 그녀를 믿지 못한다.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매춘을 한 여성이라는 일각의 어떤 소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잘못된 역사 의식, 왜곡된 역사 의식의 위험성이나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친일파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이는듯 하고. 호러블하긴 하지만 잘 만든 영화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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