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삶 속에 있다
은둔의 작가라고도 불리우는 J.D 샐린저의 장편소설 '프래니와 주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추천하는 소설 리스트 5에 이 책이 들어가 있었다.
이 책은 프래니와 주이라는 남매의 얘기로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종교적인 토론이 담겨 있다. 앞장은 프래니, 뒷장은 주이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프래니는 지식인들의 허영심과 위선적인 모습을 날서게 비판하고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깨달음을 원하며 기도문을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주이는 배우의 꿈을 꾸는 청년으로 세속적이며 야망 있는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주이와 프래니는 어릴때 지혜로운 아이들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 전업 작가로 살고 있는 버디, 형제들 중 가장 명석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지만 돌연 자살을 해 버린 시모어도 함께였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이들의 삶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정신적인 외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지식에의 추구. 병적일 정도의 강박적인 지식에 대한 추구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프래니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넌더리를 낸다. 그리고 종교에 심취하게 된다. 종교가 더 고차원적인 앎(깨달음)을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주이는 이것 역시 지적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한다. 프래니는 지식이 지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얘기하고, 프래니와 주이의 모친인 베시는 제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얘기한다.
지식은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20대 젊은이들의 짙은 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주이는 프래니에게 기도문을 외우고 싶다면 외우라고 말한다. 주이는 어쩌면 삶에서 구원의 한줄기 빛을 찾아내는 일은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그 행위 자체에 있으며 삶 자체에 있다는 듯한 답을 프래니에게 준다. 내게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정말 어쩌다 단 한 번이라도, 지식은 지혜로 이어져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혐오스러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좀 겉치레로라도 정중한 조그마한 암시라도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우울해지지 않았을거라 생각해. (프래니와 주이, 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