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어떻게 살 것인가?' 소설이 내게 묻는다

by 기록 생활자

아사다지로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였다. 요즘에는 전만큼 그의 소설을 즐겨 읽진 않지만. 그의 이력은 상당히 독특한데 그는 야쿠자였던 과거를 청산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누구의 인생에나 굴곡이 있겠지만 야쿠자로 살아왔던 만큼 그의 인생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순탄치 못한 인생의 주인공이나 '뒷골목 인생'의 주인공들인 경우가 많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집 '장미도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이다. 장미 도둑이나 히나마츠리를 제외한 나머지 소설들은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이 소설집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은 표제작인 '장미도둑'이고,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던 작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히나마츠리'였는데 다시 읽을 때도 역시 이 두 편이 가장 좋았다.

히나마츠리는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을 흘렸던 부분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나는 한 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완독을 한 작품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은데 에쿠니 가오리의 홀리가든이나 낙하하는 저녁은 한 세 번 정도 읽었지만 다른 책들은 거의 한 번만 읽고 책장으로 직행한 경우가 많다. '이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책을 언니에게 얻어와서 읽은 것도 이 소설집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던 마음이 무의식중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거의 접하지 않았던 '아사다 지로'를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생을 접하며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역시 타인의 인생을 소설 속에서 접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얻고,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수국꽃 정사(情死)

실직한 가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대형출판사 사진부에서 일하는 사진부장이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자 미리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온다. 그리고 온천 관광을 하러 가게 된다. 관광지는 관광지라고 할 수도 없게 쇠퇴일로를 걷고 있어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스트립쇼를 구경하러 갔다가 무희(Stripper)와 술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함께 죽어줄 수 있느냐'는 무희의 말에 그러자고 한다. 둘은 함께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무희가 일하던 곳의 극장 주인인 노인이 갑자기 자살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자살을 하지 않게 되고 남자는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

자신이 책임져야 할 식솔이 있는 중년의 가장에게 '실직'은 '죽음'과도 다름 없는 것이었을 터. '울고 싶은데 마침 뺨 때려준 격'으로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무희가 자신에게 '함께 죽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수락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삶도 죽음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벌어지는 게 인생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죽음'을 선택하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더 불행한 삶의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릴리는 쏟아지는 빗줄기에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떨군 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내 꽃을 피우며 살아왔을 것이다. 기타무라는 젊었을 때 곧잘 그랬듯 양손의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앞 유리를 향해 구도를 잡아봤다. 갑자기 바뀐 풍경 저편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56쪽) 수국꽃 정사(情死)

나락(奈落)

한 남자가 회사에서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 관계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은 어떤 이들에게는 '단순 사고사'로 '지루한 장례식의 이미지'로 여겨지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자살'로 여겨지며 '자신을 향한 위협'으로 와닿아 어떤 공포와 두려움을 낳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가지는 의미. 그가 주변 사람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으로 '사내 정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죽음 비용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만약 죽는 순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자네는 얼마를 내겠나?'

한 기업을 이끄는 노사장의 친구가 (그도 사업가였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죽음에 대해 뭔가 석연치 않은 의문을 가지게 되고 그가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예기치 않게 쓰러져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 서비스를 이용해보려고 하지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사기업체로 밝혀진다. 그는 자신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준 여비서와 자신의 아들 사이를 의심한다. 재혼을 통해 맞이한 아내가 여행을 떠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목격된다. 아내는 그가 쓰러져도 그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낀다. 돈만 생각하며 앞을 향해 달리느라 자식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것에 심적 괴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런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 미혼의 여비서에게 그는 고마움을 느끼고 그 미혼의 여비서가 사랑한다고 털어놓았던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죽음 직전에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여비서로 인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

결국 그에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옆에 있어준 사람, '어깨가 흔들리도록 울어준 단 한 사람'의 사랑이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아사다 지로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돈에 걸신들린 인간이라고 했다. 정치 장사꾼이라는 딱지가 붙어 세상으로부터 경멸을 받기도 했고, 피고인 석에 서보기도 했다. 우익 쪽에서 노리는 통에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며 아등바등 쌓아올린 인생의 결과가 고작 이 꼴이라니......지금 돈 봉투 안에서 알량한 돈푼을 꺼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제자식, 아니 엄청난 재산을 쌓아올리느라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다른 모습이었다.(138쪽) 죽음 비용

히나마츠리

히나마츠리는 매년 3월 3일 여자 어린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며 집 안에 작은 인형 제단을 장식하는 일본의 세시풍속을 말한다. 히나마츠리에 인형을 꺼내 장식하지 않으면 '시집을 못 간다'는 얘기가 있는 모양이다. 이 소설의 여자 어린이는 미혼모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가 자신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저씨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히나마츠리에 인형을 장식한다.


그러나 여자 어린이의 어머니는 그 남자를 밀쳐낸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무엇보다 술집에서 일하는 자신의 상대로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여자 어린이는 아저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죽다 살아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펑펑 울자 딱 한 번 어머니에게 부탁을 해본다.


아저씨가 홀로 남겨질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 그리고 아저씨가 자신이 죽으면 홀로 남겨져 외톨이가 될 뻔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와 결혼을 해달라고. 아빠가 필요하다고. 아빠가 필요한 어린 아이와 특별한 교감을 나누며 소통한 남자. 외로운 아이에게 아빠를 찾아주고 싶어했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대신 채워주었으며 아빠 대신이 되어주고자 했던, 그 역시 외톨이로 자랐던 남자의 마음이 느껴져 왈칵 눈물이 나는 소설이었다.


부어오른 눈꺼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요시이 아저씨는 그 말만 열 번도 넘게 했다. 열 번도 넘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야요이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제 괜찮아, 아저씨. 나, 이제야 알았어. 어째서 아저씨가 그 말만 하는지, 이제야 알았어. 진짜 아버지 대신 요시이 아저씨는 함께 놀아주었다. 매일 밤 목욕탕에 데려가 몸도 씻겨주었다.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진짜 아버지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어째서 그렇게 잘해주는지 나, 이제야 알았어. 요시이 아저씨는 외톨이로 살아왔으니까 나를 외톨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야. 외톨이로 보내는 밤이 얼마나 길고 무서운지 요시이 아저씨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나, 엄마에게 부탁해볼래. 평생 단 한 번의 부탁을 해볼래.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어. (196쪽) 히나마츠리

장미 도둑

아름다운 어머니와 메이 프린세스 호의 선장인 아버지를 둔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늘 편지를 쓴다. 영문으로 된 편지 말이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일상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장미를 가꾸는 일에 취미가 있는 사람으로 소년은 아버지 대신 장미를 가꾼다. 소년의 어머니는 장미를 가꾸는 일에는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다. 그녀는 자신을 치장하기만 좋아한다. 마을에는 장미도둑이 나타나고 소년이 정성스럽게 가꾼 장미가 잘려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학교에는 미남의 남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는 소년의 집을 자주 방문한다. 소년의 편지는 소년이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불륜사실을 아버지에게 고발하는 편지가 되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장미도둑은 결국 한 가정의 아름다운 장미를 꺾은 카사노바인 학교 선생님을 지칭하는 말로 그로 인해 가정이 파탄날 위기에 처하는 것을 순진한 소년의 편지를 통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뾰족한 가시가 돋아나 있다. 잘못 만지면 찔린다. 장미는 바라만 봐야 하는데 남의 집 장미를 탐하는 장미 도둑처럼 새로 부임해온 남자 선생님은 아름다운 장미를 바라만보지 않고 다가가 꽃송이를 따버려 화단을 망쳐 놓는다. 장미를 가꿀 때처럼 수고로이 노력해 가꿔온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장미가 언젠가 꽃을 피워줄 것이라 믿고 기대했기에 튼튼하게 지켜질 수 있었을 것이다.


신뢰를 저버리는 관계. 그것이 깨진 관계는 망쳐진 장미 화단처럼 되돌리기 힘들 것이다. 다시 꽃을 피우려면 그만큼의 희생과 기다림, 또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믿음과 사랑을 기반으로 다져진 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지켜가야 할 덕목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닉 선생님은 길 쪽으로 튀어나와 핀 장미꽃을 훔치는 건 엄밀히 말해 도둑질은 아니라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대디? 그건 좀 이상하죠? 그렇지 않아요? 장미 뿌리는 우리집 정원에 있으니까 꽃이 담이나 울타리 밖에 피었다고 해도 우리집 꽃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225쪽) 장미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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