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지워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지은이 손홍규
펴낸 곳 창비
이 책은 소설집이었는데 나는 장편 소설로 잘못 생각했다. 그래서 오독을 하다가 중간에 소설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편소설로 착각했던 이유는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소설 속에서 아내들은 전염병에 걸렸거나, 기억을 잃었거나(치매), 몸이 아프다(파킨슨병). 아내의 부재는 가족의 해체로 이어진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기억을 잃는다는 건 낯선 타인들의 도시에 살게 되는 것이며, 낯선 타인들에게 둘러싸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지워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취업난과 고용 불안으로 집을 가질 수 없는 시대, 저출산과 고령화가 자리하고 있는 시대. 이 암울한 시대의 풍경을 작가는 아내의 부재로 무너지는 일상 속에서 집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려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무너지고 가정이 해체되면 그 뒤엔 무엇이 남을까? 고독한 개인이 남겠지. 고독한 개인은 자신조차 지운 채 일상을 이어나간다. 다만 죽음을 기다리면서. 삭막하고 살풍경한 가정의 모습이 이 소설 속에는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생경하지만 어쩐지 무서운 풍경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문득 일일연속극 '아름다운 당신'에서 박근형이라는 배우가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부모 자식 사이는 '사실'로 되는 거라던. 그런데 그 사실이 묶고 있는 가족 관계는 과연 아름답기만 한가? 다만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가 물어보게 하는 소설들로 꽉 채워져 있는 소설집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여운이 깊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먹고 사느라고. 연민이 뒤섞인 분노가 솟았다. 먹고살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살해하며 살아왔을까.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결국 당신 스스로를 살해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118쪽), 배회 中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시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226쪽),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 中
지상이거나 하늘이거나 외롭지 않은 곳은 없었다. (254쪽) 타오르는 도서관 中 - 손홍규 소설집 [그 남자의 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