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말을 걸 때
감독 심상국
출연 유준상, 로빈 쉬엑, 박영서, 이마붑
한 생이 다른 생에게 말을 건넨다. 그럴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며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때,삶의 어느 순간. 이 영화는 그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니는 어디로 갔을까? 로니는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오게 됐으며, 어떻게 살다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영화 <로니를 찾아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인호와 외국인 노동자이며, 인호가 찾고 있는 로니의 친구 뚜힌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다.
태권도 사범이며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단장인 인호는 태권도 사범이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동네 자율방범대 대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자율방범대라고는 하지만 우르르 몰려다니며 술이나 마시고,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을 단속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다. 태권도 시범대회를 앞두고 있던 어느날. 여느날과 다름없이 인호는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외국인 잡상인을 단속한다는 명분하에 그들의 물건을 내동댕이치고, 그들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폭력을 행사한다.
시간은 흘러 태권도 시범 대회날. 성공리에 시범 대회를 마치려는 찰나, 한 외국인이 인호와 대련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외국인은 며칠전에 그가 주먹을 휘둘렀던 잡상인이었고. 그는 어떻게든 피해보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울며겨자먹기로 그와 대련을 하고 보기좋게 깨진다.
체면은 구겨질대로 구겨졌고, 도장에 다니던 아이들도 하나, 둘 도장을 그만두기 시작한다. 이쯤되니 그에게 남는 것은 오기 뿐이다. 그는 그날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외국인을 찾아 나서지만 그는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기만 하다. 인호는 우여곡절 끝에 그날 그 외국인과 함께 있었던 친구 뚜힌을 잡는데 성공하고 그의 이름이 로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뚜힌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라는 노래가 좋아 한국까지 왔다는 외국인 노동자로 로니와는 몇번 인사만 나눈 사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리가 없는 인호는 로니가 있는 곳을 안다는 뚜힌의 말만 믿고 그를 따라다니다 그의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하고, 그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그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뚜힌 역시, 그가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인호는 로니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뚜힌과 붙어 다니지만 별 소득이 없자 뚜힌을 내쫓는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인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뚜힌과 인호는 어느새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호의 원인 모를 적개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인호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떠나간 것도, 시범 대회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었던 도장도 남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 처하자 그 모든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인 로니에게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들인데, 경찰에게 주의를 받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인호는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불법 체류자인 그들이 있는 곳을 신고한다.
그러나 로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 장소(노래방)로 갔던 뚜힌은 인호의 신고로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주하려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비 오는 날 종이 박스 안에 숨어서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고 우는 뚜힌을 발견한 인호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뚜힌을 들쳐 업고 병원을 찾아가지만, 가는 곳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거절 당하고 내쫓기자 그는 울분을 터뜨린다. "이 사람은내 친구"라고, "내가 이 친구 보호자라고"외치는 인호의 모습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유없는 적개심과 원망,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뚜힌은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호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단속을 피하려다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불법 체류자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뚜힌을 통해, 로니가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인호는 도장을 정리하고 방글라데시로 떠난다. 그가 만나러 간 것은 뚜힌일까? 아니면 로니일까? 알 수 없지만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군가의 집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밝고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며,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잊고 지냈던... 잊어서는 안 됐던 그 뉴스 기사의 내용은 불법 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하려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뚜힌이 인호로 인해 비슷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기 때문에 어쩌면 잊어버렸던 그 뉴스 기사가 다시 생각났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그 기사를 읽었을 때 한동안 그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가 우리나라에 다신 오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 노동자들 중 대다수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국인에 비해 턱없이 작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의 더 나은 미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럽다는 말을 듣고, 차별을 받아도 참고 또 참는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에 남아 있고 싶어한다. 이곳에서 몇년만 고생하면 그들에겐 사랑하는 가족과의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많은 위험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일을 하다 손을 다치거나, 다리를 다치거나 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추방된다. 고용주들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부리기 쉬우며, 말이 안 통해서 벗겨 먹기 쉬운 일꾼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서 고용되고, 조금이라도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물론 요즘엔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처럼 막 부려먹는 그런 곳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는 것 같긴 하더라만...
아직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착취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우리와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으로 보지 않고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노동자로서 바라보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영화 로니를 찾아서는, 어딘가에 있어야 하지만 - 그 어디에도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설 자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들을 포용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해 - 이 피가름 억센 우리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조금 씁쓸하고 아픈...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