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Apr 17. 2017

양복 한 벌

양복 한 벌과 인생 수업

어떤 물건을 얻거나 가지게 되면, 그 물건으로 인해 삶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운동화를 사게 되면, 달리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거나 그걸 신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우습지만,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하루종일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없던 여유마저 생긴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되고. 물론 그런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해 사라지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새 차를 뽑았을 때 그거 타고 여행도 많이 가고, 전속력으로 달려봐야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시들해지는 것처럼.
 
양복 한벌은 멋진 양복 한벌만 가지면, 인생이 뭔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10대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복 한벌만 가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던 세명의 소년. 열심히 일을 해서 이웃 마을에 놀러갔다 보았던 멋진 구찌 양복을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그걸 사기엔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유조 트럭을 훔쳐 꿈에 그리던 양복을 손에 넣게 된다.


양복은 한벌, 그게 필요한 사람은 세명. 돌아가면서 양복을 입고 하고 싶었던 일, 이루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게 된다. 결과는? 불행히도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멋진 양복을 걸쳤다고 삶이 달라지겠나? 그들의 삶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고, 지루한 삶은 계속되기만 했다. 꿈도 이루지 못했고, 양복 때문에 친구들 사이의 우정에는 금까지 간다.
 
 
어쩌면 세명의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멋진 어른이 되어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찾아가고, 자신의 새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생선가게 여주인을 찾아가 프로포즈를 하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현실로 이루는 것은 그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럴 나이지 않은가. 양복 때문에 삶이 바뀔 거라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고 순수한 10대였으니. 고작 그들은 열여덟이었다. 하지만 그 양복 한벌 때문에 그들은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생의 행복은 좋은 차, 멋진 집, 멋진 여자 친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하나 하나 이뤄나가는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 물론 그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들은 비싼 댓가를 치뤄야만 했다. 친구인 어리버리는 죽었고, 그들은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간다.
 
 
물론 어리바리가 죽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들을 태운 배가 점점 멀어지면서 영화가 끝이 나는데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은 길 없는 바다 위를 배를 타고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깊은 여운을 주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씁쓸하게 목적지도 알지 못한채로 떠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행복해보였다.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이제 인생의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것과 정면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부딪쳐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양복 한벌이 무의미 했던 건 아니었던 게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 성공과 명예에 대한 욕구. 그런 것들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들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앞으로 그들에게 펼쳐질 인생이 더없이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자 모든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쳤다.
 
 
물론 나도 그랬고. 이 영화가 가져다준 여운과 감동이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날 정도다. 다시 볼 수 있다고 하면,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