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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y 08. 2017

비스티 보이즈

청춘 표류기

영화 비스티 보이즈

간단하게 말하자면, 술 따르고 몸 파는 창부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겉만 보면 지질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남자는 지질한 남자들이고, 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 역시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는 밤 문화 따위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 어느 정도 호기심은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 역시 그러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배우의 조합 역시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하정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호스트 바...잘 모른다. 호빠(호스트)라고 불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아침에 빨간색 스포츠카의 문을 열어주며 ' 조심해서 들어가세요'라는 멘트를 날리는 남자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재미있었다고 했나. 즐거웠다고 했나. 암튼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올라탔다. 남자들은 꽤 말쑥한 차림이었고, 여자들도 세련된 차림이라 유심히 보게 됐는데... 그 뒤에 있던 건물이 공교롭게도 모텔이었고 그 바로 앞에 여성전용 노래방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머리 속에서는 그 전날 있었을 상황들이 대충 그려졌다. 그 여자들은 돈 많은 부잣집 여자들이고 (한눈에 보기에도 돈 꽤나 있어 보였다.) 남자들이 그 여자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걸로 봐선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남자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암튼 아침부터 보게 된 그 풍경은 왠지 상쾌한 아침 공기와는 어쩐지 잘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의 단면을 본 듯한 느낌이라 이질감이 들었다. 불쾌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냥 좀 낯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정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지만, 윤계상의 연기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영화다. 윤계상은 하정우만큼이나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을 줬다. 어떻게 보면 윤계상이 주연 같기도 하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정우가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세 부류 밖에 없다. 여자의 진심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남자와, 그 남자에게 빌붙어 사는 여자. 또 그 여자에게 버림 받는 남자.
 
하정우는 여자에게 기생해 사는 남자를 연기했고, 윤진서는 그런 남자에게 빌붙어 사는 여자를 연기했다, 윤계상은 그 여자에게 버림 받는 - 가장 비극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세 부류 모두 인생을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헬스 클럽에 다니며 몸을 만들고 많은 여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돈 때문이다. 그 여자들에게 돈이 없다면, 이들은 그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다. 그 여자가 자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이쪽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 여자들 대부분이 하룻밤을 즐길 상대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건 이들에게도 그들에게도 부담이 될 뿐이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그러니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돈을 빠른 시일 내에 얻어내는 것이다. 내게 돈을 줄 수 없는 여자라면 가급적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 재현(하정우)은 집을 얻어 옮기듯 A라는 여자에게서 B라는 여자에게로 재빠르게 옮겨간다. 승우(윤계상)는 부자로 잘 살았던 과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현처럼 여자에게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 그는 도도하게 군다. 돈이 있는 여자에게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는 단지 '돈' 때문에 호스트 바에서 일하며, 잠깐만 일 할 계획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그는 순수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강하다. 그는 아직 남자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원(윤진서)에게 빠진다. 지원은 자신을 텐프로라고 속인다. (그녀는 실제 불법 안마 시술소에 다니는 술집 여자였다) 텐프로는 2차를 나가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승우에게 지원은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 그쪽 세계에 완전히 몸을 담그지는 않은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승우는 지원에게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자신과 같은 부류이며 - 그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믿었을 것이다. 지원을 사랑하게 되는 승우는 지원의 집에 칫솔이 많았던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고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승우는 지원을 사랑하게 될 수록, 그녀가 술집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온전히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진 승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고 - 그녀의 마음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본디 줄 수는 있어도 돈을 주고 사올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마음도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닌데 - 어찌 남의 마음을 사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애초부터 지원은 승우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승우는 절망한다. 그녀를 찾아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보지만, 여자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지 않느냐며 그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칼로 찌르고 흐느낀다.
 
재현은 자신을 사랑해준 여자의 진심을 짓밟고 - 그녀를 속여 얻어낸 돈으로 일본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이어간다. 어쩌면 재현에게 사랑은 부담스러운 것이고,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두려움이 많다. 그래서 그는 도망간다. 사랑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했다가 버림 받은 쪽과, 진심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준 여자를 몰라보고 도망다니는 남자.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겉으로 보면 승우 쪽이 더 불행해보이지만, 사실은 둘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승우가 사랑했던 건 어쩌면 '그녀'가 아니라, 남들이 쉽게 소유하지 못하는 여자를 소유했다는 만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무너지자, 승우는 자신이 쫓아왔던 것이 허상임을 깨닫고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승우는 '돈' 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원래 부자로 잘 살다가 망하면, 더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 그가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돈을 많이 버는 호스트 바에서 일하면서도, 회의감을 느낀다. 그는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빨리 돈을 모아서 이 일을 그만둬야지라고 말하는 여자(지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꿈을 꾼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하지만 그는 그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여자와 함께 사는 대가로 계속 돈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서 함께 산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그는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된다.  진심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폭발한다. 그가 가졌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이나 기대 역시 무너진다. 그래서 그의 절망감이나 상실감은 더 깊었을 것이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뒷맛이 개운치는 못하지만, 여운이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고, 난 이 영화가 꽤 잘 만들어진 청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견 화려해보이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절엔 누구나 속이 텅 비어 있는 풍선 같은 모양으로 허공에 떠 있는 지도 모른다. 표류하는 청춘, 고립되어 있는 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비스티 보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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