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장으로 간 고등어에게 보내는 편지
한 중년 남성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인데, 고등어가 나오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웃고 나서 왠지 슬퍼지고 말았다. 고등어가 꼭 이 남자 주인공 같아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컴닥터라고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컴퓨터 수리 기사다. 결혼은 아직 하지 못했는데 어느날 컴퓨터를 수리하러 어느 집을 방문했다가 예전에 사겼던 여자를 만난다. 컴퓨터 싫어하지 않았냐고 말하는 여자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돈이 안 되잖아라고 말하고 남자는 갑자기 테니스장을 찾는다.
아마도 남자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은 테니스를 치는 것이었던가 보다. 남자는 텅 빈 테니스장에서 혼자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 공 하나를 들고 하는 테니스지만 남자는 행복해 보인다. 남자는 열심히 테니스를 치다가 하수구에 공을 빠뜨린다. 공을 꺼내려다 남자는 고등어를 꺼낸다.
고등어가 있어야 할 곳은 테니스장이 아니다. 남자는 바다로 가라고 말하면서 고등어를 집어 던진다. 어쩌다 보니 테니스장에 오게 된 고등어처럼 남자 역시 어쩌다 보니 좋아하지도 않는 컴퓨터 수리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남자에게 테니스장은 고등어가 떠나온 바다인지도 모른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고등어가 테니스장까지 흘러왔듯 남자 역시 시간이라는 파도를 넘어 자신이 있고 싶던 장소로부터 멀어졌다. 어쩌다 보니 지금 내가 여기에 와 있지? 남자는 고등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다로 돌아가라며 고등어를 놓아줄 때, 남자 역시 자신을 팍팍한 일상으로부터 놓아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운이 길게 느껴지는 영화가 된 것은 고등어의 힘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