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하다
삶에 대한 긍정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도시적인 느낌을 가진 신민아는 영화 속 명은이 역에 너무나 잘 어울렸고, 도시 여자이면서도 어쩐지 시골스런 냄새도 풍기는 억척스런 느낌의 공효진은 명주 역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게 이 영화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 같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남성 중심의, 아버지 중심의 사회에 반기를 든 영화처럼 내게 느껴졌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은 아버지의 자리를 남겨놓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것은 거세되어진 채 등장하며, 명은이 찾아 헤매던 아버지의 자리는 거세되어진 형태로 나타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다른 자매인 명은과, 명주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사실 아버지가 없었다면 그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므로 아버지가 없다고 말해버리는 건 어쩌면 틀린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부재는 심리적인 것에 더 가깝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명주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명은에게도 아버지가 없었다. 명주는 아버지가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 그로 인해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녀가 방황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심리학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읽었다.
그것은 "이런 남자와는 결혼하지마라" 와 같은 내용으로 피해야 할 남자를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와 결혼하려면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아라"라는 것으로 아버지가 없는 채로 자랐거나 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의 경우, 결혼을 해서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부재했으므로,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어떠한 이미지나 역할 모델이 없어 자신이 아버지가 될 경우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꽤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그동안 쭉 해왔고 - 지금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의미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그저 사실에만 머무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의미로 남게 되면 이것은 상처가 된다.
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아버지 없는 아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력 역시, 이와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명주의 상처는 자신에겐 아버지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아버지 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냉소적인 시선과 편견이 그녀를 상처 입힌다. 아버지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어떠한 의미로 나아갈 때 - 그리고 그러한 의미의 부재로 확인될 때,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상처를 입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있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현실인 동시에, 사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 아이는 어째서 아버지가 없지? 뭔가 잘못된거야. 우리에겐 다 있는 아버지가 없다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 어떠한 우월감마저 가지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그 아이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머니가 없는 아이에게도 이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 우월감마저 가지게 되는 건 우리 사회가 모계중심이라기보다는 부계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보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엄마는 억척스러워지지만,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는 아버지는 여성스러워진다.
여성스러운 아버지는 자상하다고 칭찬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느라 억척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욕먹는 사회가 우리사회다. 여자는 여성다워야만 하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생계 때문에 억척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과부들은 과부라서 청승 맞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도 없는 여자라 여겨지며 그 때문에 그런 그녀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자식이 훌륭하게 커서 그런 어머니의 기라도 펴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라는 말이나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불행할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감독이, 명주와 명은이에게 아버지를 구태여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도 - 그러한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느껴졌다.
아버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고,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여지든 말이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이것이 좋지 않다고 느낄 때 - 그렇게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모든 불행은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