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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2. 2016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감독 이윤기

출연 임수정, 현빈


이 영화는 좁은 차 안에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영신/임수정)는 곧 남자를 떠난다. 해외 출장을 앞둔 그녀에게 남자(지석/현빈)는 마중을 나가겠다고, 데려다주겠다고 말하지만 여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한사코를 그를 말린다. 그리고 음료수를 내민다. 여자가 산 음료수는 과일 주스와 라떼다. 남자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라떼를 산 것은 자신이 마시려고 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라떼를 마시겠다고 한다. 두 사람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어긋난 관계라는 것을 영화는 이렇게 시작부터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라떼를 건네주고 여자는 떠나겠다고 말한다.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작업실을 집으로 옮기겠다는 남자에게 이별을 선언한 것이다. 남자는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한 공간에 머무른다. 두 사람은 부부다.


집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폭우로 집 안에 갇힌다.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여자와 애써 태연한 척 축구 경기를 보는 남자.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해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사는 남자와, 무언가를 잘 정리하고 쉽게 버리는 여자는 애초부터 성격이 맞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자는 정리를 하려 하고 남자는 정리하지 못해 미적거린다. 이것은 두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변한 것은 여자이고, 여자에게 다른 사람이 생겨 헤어지는 것이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너무나 이성적인 남자와, 감정적인 여자는 그렇게 매순간 엇갈린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서 집 천장에서는 물이 새고, 떠나려던 여자는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고 남자와 시간을 더 보내게 된다. 여자는 짐을 꾸리면서 파스타 책을 가방에 넣었다가 다시 꺼낸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의 흔적들이 책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 곳곳에 남아 있는 책이다. 남자는 집에 들어온 이웃집 고양이를 안고 있다가 고양이가 할켜 손등에 상처를 입고 여자는 남자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려고 하지만 남자는 피한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이삿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자는 여자를 위해 커피를 내려주고, 파스타를 만든다. 두 사람은 함께 나눌 마지막 저녁을 함께 요리한다.  남자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샐러드에 들어갈 양파를 썰어 달라는 여자의 부탁에 남자가 도마 위에 양파를 놓고 칼질을 하다가 양파가 매워 나오는 눈물을 참은 것이 남자가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낸 부분이다. 양파가 매워 흐르는 눈물은 마치 남자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이렇게라도 당신 좀 울어야 해...'하는 것 같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그제서야 남자는 좀 운다. 여자는 정성스럽게 파스타를 데코레이션 하고 식탁으로 갖다 놓고 남자를 기다린다. 그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던 고양이가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여자는 살금살금 나온 고양이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한다. "괜찮아."라고. 다 괜찮아질거라고.
 
어딘가에서 떨어져 상처를 입고 부부의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 다쳐서 숨어 있는 고양이와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처 받은 고양이와 상처 받은 부부는 동일해보인다. 이 영화는 일본 작가의 소설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나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책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이다. 내용이 생각이 안 나서 다시 찾아보니,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었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고양이는 개하고 달라서 길들이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애교도 잘 떨고, 사랑스럽지만 가끔 주인을 할퀴기도 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려 주인 애를 태우기도 한다. 개하고는 달라서 사람을 잘 따르지도 않는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어쩌면 남자에게 여자는 어느날 자신의 마음으로 뛰어 들어온 고양이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특정한 대상이 아나라 모든 사랑이 그토록 길들이기 어렵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할퀴고 달아나버려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내가 마음 준 존재.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버림 받아도 쉽게 떨쳐지지 않는 것. 사랑은 그토록 어렵고 그래서 한쪽의 배신으로 일방적으로 버려져 맞이하게 되는 이별의 순간은 더 잔인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간간이 밖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집 안은 많이 어둡고, 눅눅하고 습한 느낌을 준다.
 
물이 새는 집. 깨져버린 관계. 어긋나고 고장난 사람의 마음이 구멍난 천장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바람난 아내는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매달리지도 못한다. 남편이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해온 사람처럼 남편은 헤어짐을 준비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화가 나지만 애써 화를 삭인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되돌리고 싶다고 해도 매달릴 수도 없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지만, 두 사람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뿐이다.


비가 그치면 여자는 집을 나갈 수 있고, 남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를 떠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헤어짐도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한 부분, 한 조각일 수 있다는 듯 남자와 여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양이를 찾으러 온 부부를 맞는다. 그리고 다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함께,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정인의 장마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이 노래의 가사는 마치 '지석'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이 영화의 OST는 아니지만,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영화의 장면들이 나왔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도 좀 든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정 출연을 한 김지수와, 목소리 출연을 한 하정우도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의 팬이라면 김지수와 하정우를 발견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겠다. 좀 심심한 듯하기도 하지만 꽤 여운이 있는 영화 같다. 두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는 두 사람의 전세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궁금하다면 직접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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