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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n 12. 2017

피에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의 삶과 그늘

 "용서해줘. 내가 널 버렸어" 여자가 말한다.
남자도 말한다.
 "당신이 정말 날 버린 내 엄마 맞아?"
 
날 때부터 세상에게 버림 받은 남자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찌르면서. 그런 남자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영화 피에타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한다. 남잔 여자를 믿지 못한다. 여자는 자신이 그의 어머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의 살을 먹는다. 그가 먹으라고 준, 그가 직접 자신의 칼로 도려낸 허벅지 살을. 여자는 구토를 참아가며 그걸 집어 삼킨다. 이것은 마치, 효심 깊은 아들이 자신의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칼로 베어 그걸 먹은 부모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구전 동화를 비꼰 것 같다. 사실 여자는 그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그녀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그의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의 어머니가 되어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그에게 전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그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영화 피에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언제든 사람을 찌를 수도 있는 것이다. 강도는 돈을 빌린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신체를 절단하면서까지 그들이 빌린 돈을 받아내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가 얻는 것은 누군가의 원한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돈을 빌린 사람들이 제때 그 돈을 갚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응당 치러야 할 제 몫의 고통이고 돈을 빌린 대가라고.
 
불구가 되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구가 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기꺼이 불구가 되어서라도 빌린 돈을 갚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사람도 있었다. 양쪽 손이 불구가 되더라도 돈만 받을 수 있고,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듯 자신의 두 팔을 내어주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돈'이라는 칼에 맞거나 찔린 사람들이다. 돈에 찔리고 나서도 돈을 숭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계처럼 일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함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들 모두 이강도에 의해 삶이 망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강도 역시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버림 받은 이로 그려지고 있다. 어찌보면 그 역시 돈이라는 칼에 찔려 피 흘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인 동시에 삶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생을 이어가는 일은 밥벌이와 연결되어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다투고, 서로를 찌르기도 하며, 돈 때문에 등을 돌리고 멀어지기도 한다.
 
이강도는 빌린 돈을 제때 갚지 않는 그들 앞에서 심판자처럼 굴지만, 결국 그도 '돈'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롭다. 자신이 외롭다고 느끼지도 못하고 살 정도로 외롭다. 늘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 앞에 '어머니'가 나타난다. 절대적인 사랑(아가페)을 지녔다는 어머니가. 그는 그 사랑 앞에서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한다. 그러나 종국에 그는 다시 혼자 남겨진다.


한 번 맛본 사랑은 그를 다시 그 이전의 상태로,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여자의 바람대로 '절망'을 맛본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며 자신 때문에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찾아온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있어준 그녀를 잊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돈 때문에 죽기도 한다.


또 돈이 많아도 죽는 이들도 있다. 또 돈이 없어도 삶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뭐니뭐니 해도 머니라지만, 돈이 사람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놓아 두어서는 안 된다. 돈이면 다 된다고, 돈이 내 모든 것이라고 섣불리 믿어서도 안 된다. 물질의 척도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그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돈에 기대어 살 수 있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 때문에 절망하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켜봐주는, 그 사람의 삶의 이유가 되어줄 사람일 것이기에.


영화 피에타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미켈란젤로의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피에타라는 주제의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 역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본뜬 듯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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