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Jun 16. 2017

똥파리

그는 왜 똥파리가 되었나

*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처럼 구성해보았습니다.

그는 왜 똥파리가 되었나?
 
한 마을에서 한 남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머리엔 둔기로 얻어 맞은 듯 심하게 상처가 나 있었고, 얼굴과 머리는 피범벅이 된 채였습니다. 주검으로 발견된 남자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었고 후줄근한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살고 있지도 않은 마을에서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그에겐 대체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팀은 이 남자의 그날의 행적을 추적, 취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원한을 사고 있었던 용역 깡패였습니다.



서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만식 씨. 그는 상훈 씨와 함께 일했고, 꽤 잘 지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고깃집을 차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채업자였습니다. 만식 씨는 지금까지도 상훈 씨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상훈이는 제 동생 같은 놈이었어요. 그렇게 갈 놈이 아닌데..."
 
만식 씨는 상훈 씨가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만두고 싶다고, 아니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왜냐고 물으니까 지겹다고... 그러더라구요. 깊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이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는데 더는 잡을 수가 없어서 그러라고 했어요. 상훈이가 그만둔다고 해서 저도 예전부터 돈 좀 모이면 하려고 했던 고깃집 해야겠다고 마음도 먹었었고...그날 마침, 상훈이 조카가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한다고 해서 일 끝나고 바로 거기로 온다고 했었는데...그렇게 된 거예요."
 
만식 씨는 고아로 자라 상훈 씨를 남다르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상훈 씨가 자신에게 반말을 했어도 친구처럼 잘 지냈던 것도 상훈 씨가 속정이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그랬다고 털어놨습니다.
 
"입은 좀 거칠고 표현도 잘 못했어도, 착한 놈이었어요. 누구한테 원한 사고..그럴 애가 아닌데...애들을 자주 패긴 했는데...그건 이 일 하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만식 씨는 채권 추심일을 하면서 상훈 씨가 힘들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억지로 했던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사실 누굴 때려서 돈을 번다는 게...좋은 건 아니잖아요. 돈 벌어도 제대로 안 썼어요. 빠징코나 하고... 아니면 이복 누나네 다 갖다주고. 가끔 조카 과자나 선물 같은 거 사주고... 별로 자기한테는 안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통장 하나 만들어 오라고 했었어요. 너무 돈을 펑펑 써서... 좀 모아주고 싶어서...그랬더니, 통장을 두 개를 만들어 오더라고. 가족 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번갈아서 좀 넣어 달라고 그랬거든요."
 
만식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상훈 씨는 입은 좀 거칠어도 마음이 따뜻한 남자였습니다. 채권추심을 하러 가서도 돈 받으러 갔다가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밥을 사주고 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식 씨의 말과는 달리 그의 밑에서 일했던 부하 직원들의 말은 좀 달랐습니다.
 


"얼마나 악랄한 사람이었는지 아세요? 동료들도 맨날 패고...같이 일하는 사람한테까지 손 대고. 전에 계시던 사장님한테도 그걸로 욕 많이 먹었었어요. 죽은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잘 뒈졌어요. 그 새끼. 그 새끼한테 안 맞아본 사람이 없어요. 제 동기들 중에는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채권 추심 하러 다니면서도 원한 많이 샀을 걸요. 연장 들고 가서 무지막지하게 패고. 진짜 죽지 않을만큼만 팼던 것 같아요. 그러니 수금이 잘 되니까 사장님은 더 이뻐라 하고... 그러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동료들도 막 패고...진짜 그 새끼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요. 근데 이거 얼굴 모자이크 처리 되죠?"
 
익명을 요구한 그의 부하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것일까요?
 

그의 혈육이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팀은 그의 가족을 찾아가봤습니다. 우선 그가 생전에 살뜰하게 보살폈다던 그의 조카 형인군을 만나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은 상훈 씨의 조카 형인군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삼촌이 외할아버지 때렸어요. 그래서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외삼촌이 외할아버지를 때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상훈 씨가 친아버지를 때리는 패륜아였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상훈 씨의 친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상훈 씨가 그렇게 된 데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상훈 씨의 이복 누나는 말했습니다. 상훈 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고 했습니다. 상훈 씨의 누나는 상훈 씨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바람을 피워 자신(누나)을 낳은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훈 씨의 이복 누나는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팀에게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상훈 씨의 아버지가 상훈 씨의 여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훈 씨의 아버지는 부부 싸움을 벌이던 중 아내를 칼로 찌르려 했고 이를 말리려던 상훈 씨의 여동생을 칼로 찔렀습니다. 어린 상훈 씨가 다친 여동생을 업고 집을 뛰쳐 나온 사이, 상훈 씨와 여동생을 뒤따라가던 상훈 씨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상훈 씨는 아버지를 미워하게 됐고, 아버지가 감방에 간 사이 어린 상훈 씨는 어찌됐든 살기 위해 주먹을 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상훈 씨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진 사람들 모두가 상훈 씨처럼 세상과 쉽게 화해하지 못하고 용역 깡패가 되거나 험하게 세상을 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상훈 씨가 자라온 환경이 어떠했는가를 모두 알게된 취재팀은 그만 촬영을 접기로 했습니다.


더 파고들어 봤자, 이미 죽은 상훈 씨에게도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도 상처만 남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상훈 씨와 남다른 우정을 쌓았던 - 그녀는 자신을 상훈 씨의 여자친구라고 밝혔습니다. - 한 여고생은 상훈 씨와 비슷한 일을 하는 남동생을 보며 상훈 씨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그림자가 언제쯤 걷힐지 몰라 막막하고 두렵다고도 했습니다. 상훈 씨와 같이 그늘진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똥파리들은 우리 사회 그늘진 곳 어디에나 있습니다. 단지 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살아남기 위해 주먹을 휘둘러야만 하는 그들의 아픔이 상훈 씨의 죽음에 투영되어 보이는 것만 같아 취재 내내 마음이 아팠노라고,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들은 말했습니다.


똥파리. 상훈 씨의 별명이었습니다. 상훈 씨는 똥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 죽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늦은 후회와 반성. 그리고 각오. 그러나 그 이전에 상훈 씨와 같은 똥파리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사는 그들을 더럽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피에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