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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n 14. 2017

고슴도치의 우아함

고슴도치의 가시 속에 숨어있는 사랑스러움

이 소설은 한 수위의 이야기다. 고슴도치 같은 과부의 이야기다.

그녀는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의 수위다. 그녀는 남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 지적이고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숨는다. 부자들이 자신의 그런 고상한 예술적 취향을 알게 된다면 불쾌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소녀가 있다. 철학적이고 심오한 사고를 하는 이 소녀는 부자들의 가식과 위선의 세계를 증오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다 그녀는 수위의 고상한 취향을 눈치 채고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 죽은 아르탕스 씨 집에 새로 입주하게 된 일본인 오즈 씨가 있다. 그도 그녀의 우아함을 알아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오즈 씨와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닌 수위 르네 사이에는 묘한 감정도 오갔던 것 같지만 삶이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찬 그 순간에 르네는 세상과 작별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우연히 끼어든 로맨스, 그리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 자살을 꿈꾸던 소녀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았고 르네는 죽는 순간 아르탕스 씨의 아들을 떠올리며 동백꽃을 생각한다.

아르탕스 씨의 아들이 아플 때 살아갈 힘을 준 동백꽃을 그녀도 생각한다.

동백꽃은 추울 때 피는 꽃이다. 르네에게 찾아온 삶의 새로운 가능성은 동백꽃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죽어서, 어린 소녀의 얼어붙은 가슴에 동백꽃이 되어 피어난다.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결말 앞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동시에 아주 따뜻하고 뭔가 위로를 받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아름다운 르네를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삶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지을까?
어느 날 팔로마가 내게 말했다.
중요한 건 죽는 순간이 아니라,
죽는 순간에 뭘 하는가라고.
죽는 순간에 난 뭘 했지?
내 가슴의 온기 속에
이미 준비된 답을 가지고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449~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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