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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n 28. 2017

연적

사랑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의 저자는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장면들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그려지며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는 줄거리의 이야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신문에 보도되었던 생활고에 지병으로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약간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 시나리오 작가도 여성이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지만 동시에 연애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는 세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그녀의 장례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는 고민중이 그로부터 1년 후 그녀의 기일에 시골에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가 연적인 앤디 강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로드무비'를 연상시킨다. 길 위에서 시작되고 길 위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길 위의 소설이라 불릴만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든다. 연적인 두 남자는 그녀의 유골을 훔쳐 달아난다. 그리고 유골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적이었던 두 남자는 그녀의 유골을 그녀가 좋아했던 장소에 뿌려주자고 합의하고 같이 길을 떠난다. 독자는 이 두 남자의 여정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며 그 끝에 두 남자의 한 여자를 향한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도 계산의 대상이 된 요즘에는 이 소설 속 두 남자의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들과 같은 남자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뭐,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도 아닌, 이미 죽은 여자를 향한 이 두 남자의 연정은 뜨끈뜨끈하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데운다. 그래서 어쩐지 뭉클해지고 눈물도 좀 나고. 그런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에 그녀가 아닌 다른 공통점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연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 둘 다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사무치도록 미안한 마음을 가진 남자들이었고 미련하게 뒤에서 질척이는 애인들이었고 그녀의 죽음을 원망할 자격도 없는 놈들이었다. (119쪽)
 
담배를 피우며 해변을 걸었다. 주변에서 눈총을 주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재연과 함께 이 해변에 왔어야 했다. 함께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걷고 바람을 쐬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아무 음식이나 시켜 술잔을 기울였어야 했다. 어딘지 모를 그 오름도 재연과 내가 올랐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름의 이름 따위를 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없을 때, 그것을 절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부재를 느낀다. 그것이 그녀가 좋아했던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149~150쪽) 연적 中, 김호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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