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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l 14. 2017

세계 음치

익숙해질 수 없는 어른의 세계에 표류한 남자의 일기

예전에 <너에게 날리는 홈런>이라는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만화를 읽고 나서 그 다음해에 야구장을 갔는데 그 만화 내용이 생각이 났다.


그 만화 주인공은 야구선수인데 2군 선수였나? 뭐 그랬다. 항상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그 야구 선수는 그날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학생은 그를 응원오는데 그가 그날따라 홈런을 친다. 그런데 그 홈런에 그 여학생이 눈을 맞아서 실명이 되고 결국 고백을 하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매우 감명 깊게 읽었던 만화였지만 야구장에 갔을 때 그 만화 내용이 생각이 나서 약간 무서웠다. 그래도 처음 가본 야구장이어서 (사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야구장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가게 됐다) 사진도 꽤 찍었던 것 같다. 야구는 무척 재미있었고 응원하던 팀이 역전승으로 이겨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야구를 드라마보다 더 즐겨 봤지만 "네가 언제부터 야구를 봤느냐"는 엄마의 타박에 점차 수그러들다가 이젠 야구를 안 보게 되었다. 아무튼 야구에 관심이 없던 내가 야구장에 간 후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좀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며 응원을 가열차게 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홈런볼에 맞을까 무서워했던 일이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역시 홈런볼에 맞을까 무서워서 야구를 보러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 반가웠다. (나는 보러가긴 했지만)

세계 음치의 저자 호무라 히로시는 (아마도 필명인 거 같지만) 일본에서 20대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책은 이 책 뿐이다.

아무래도 그의 에세이들은 좀 사소하달까 그런 일상의 이야기들을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이라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소한 이야기들이 사소하지 않고 매우 재미있었고 또 때로는 뭉클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지금의 나는 인간이 자신을 극한까지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을 이용해 인체실험을 자행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말하자면 그 보고서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약간은 소심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그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작은 것에도 감탄하고 기뻐할 줄 알고, 매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호무라 히로시라는,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솔직하기까지 한 남자의 일상을 엿본 기분이다. 더위를 잠깐 잊게 해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된장국이란 소중한 것이로다  
그저 덧없는
이번 세상에서만 먹는다 생각하면
-사이토 모키치

'소중한 것이로다'라든지 '이번 세상에서만 먹는다'라니, 이 시를 읽으면 작자는 이상하리만치 '된장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집착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사실은  '된장국' 자체가 아니라 된장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자신의 생명이다. (10~11쪽)

어른이 되면서 변한 기호가 있는 반면에, 몇 년이나 인간으로서 살았어도 배우지 못한 것, 익숙해지지 않는 것, 못 하는 것도 있다. (238~239쪽)

시간 그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는 이 감각은 무엇일까. 내가 숨어드는 시간의 흐름은 종종 그런 식으로 끓어올라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241쪽)

건강 오타쿠란 바꿔 말하면, 자기 오타쿠를 말한다. 자기 자신을 막 다루는 인간이 멋지다고 동경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여서 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녹즙까지 마시고 있다. (260쪽)

세상이란 완전히 시적인 곳이다. 만일 당신이 그곳에서 시 이외의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이다. (272~273쪽)  -세계 음치, 호무라 히로시 지음, 박수현 옮김/haru 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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