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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l 17. 2017

마음에 따뜻한 붕대 감기

영화 <붕대 클럽>

영화 붕대 클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붕대'를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마음 속에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 여학생이다. 이 여학생의 이름은 와라. 와라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늘 게임에만 빠져 지낸다. 엄마는 술에 절어 지내고,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다. 덕분에 집안을 돌보는 것은 이 어린 여학생의 몫이 됐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와라의 엄마는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는데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할 때가 많다. 7년 전에 바람을 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엄마는 이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영화 붕대 클럽


이런 집안의 분위기 탓에 이 여학생은 사랑을 믿지 않고 염세적이고 조금은 차가운 성격을 갖게 됐다. 와라는 여느날처럼 요리를 하다가 칼에 손목을 베인다. 붕대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은 와라가 자살 기도를 했던 것으로 안다. 와라는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심 죽고 싶은 듯한 눈빛과 표정이다. 병원 난간에 올라서는 와라는 한 남학생을 만나 지상으로 내려온다.


영화 붕대 클럽

자신을 디노라는 별명으로 소개한 남학생은 와라를 위해 여학생이 올라갔던 난간 사이에 여학생의 손목에서 풀어진 붕대를 묶어준다. 이 여학생은 이후 상처를 받은 이들을 위해 어떤 특정한 장소에 붕대를 묶는 일을 하게 된다. 상처 받은 마음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다. 실연을 당한 친구를 위해 놀이터 그네 기둥에 붕대를 묶었던 와라는 감동 받은 친구가 올린 놀이터 그네 붕대 사진을 본 남학생(재수생)을 만나 붕대 클럽을 결성하게 된다.

한편 와라를 위해 붕대를 묶어주었던 디노는 괴짜 같은 행동으로 유명한 학생이었는데, 꽤 부잣집 도련님으로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남학생 역시 자신의 상처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에서 등장 인물이 했던 말이 생각 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상처를 싸맬 줄 아는 거"라던. 그러나 상처를 드러내 놓지도 못할 정도로 상처 받은 이들에게 자기 마음을 싸매는 일은 버겁고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붕대 클럽에 가입하길 권유 받았다가 거절하고, 단지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상처를 받아서, 붕대를 감는 행위를 신고하고 비난했던 템포가 자살 기도를 할까봐 템포의 친구들은 무진 애를 쓴다.



영화 붕대 클럽

디노의 필사적인 붕대 감기에 눈물이 났던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친구들이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붕대를 감는 모습을 보고, 그 진심에 감동한 템포는 생각을 바꾼다. 그리고 디노 역시 와라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붕대클럽에서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싸매주면서, 이들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성장통 없는 성장이 없듯이, 우리의 마음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러번 통증을 겪는다. 오랜시간 앓고 난 뒤에 얻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 그리고 조금 더 넓어진 마음의 그릇일 것이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것(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에게 위로를 받고 또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 상처를 들여다 보고 어루만져주려는 그 마음은 곧,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 깨어지기 쉽고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 볼 수 있다면 - 나의 마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 행동할 수 있다면 학교 폭력으로 자살을 하거나, 누군가를 상처 주면서 자신의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려는 못난 행동들도 조금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가슴 아픈 자살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살펴봐야 할 일이다. 지금 누군가 마음의 붕대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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