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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l 24. 2017

초능력자

이타심으로 완성되는 초능력의 세계

원작이 일본 만화라고 하던데...원작 만화와 강동원의 초능력자 스틸컷을 비교해보면 강동원이 얼마나 세심하게 배역을 소화해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초능력자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친부모에 의해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살아난 이 영화 속의 초능력자는 장애인이다. 다리 한쪽에 의족을 하고 살아가는 초능력자가 좋은 직업을 갖기란 아마도 힘든 일이었을 터. 그는 영화 속에서 그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초능력을 이용해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그가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의를르슈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그의 힘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 바로 유토피아 대리 임규남이다.
 

영화 초능력자

규남은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어느날 갑자기 해고 당해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정도로 - 그래서 때론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변하기 시작하는 건 초능력자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초능력자는 보이지 않는 권력 그 자체를 의미하고 규남은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시민.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다른 점이 있다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점 뿐이다) 그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조종 당하고- 지배 당하고 착취 당하면서도 이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나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규남은 초능력자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 한다면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점 뿐이다. 오히려 그는 인간적이라는 점 때문에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이용만 당하다 버려져도 이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다.


영화 초능력자

이 영화 속에서 규남의 친구가 말했듯이 규남이 초능력자에 의해 조종 당하는 이 세상과 싸우기로 결심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초능력자에 의해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견뎌나간다. 그런 그들의 내일에 대한 희망을 너무나 쉽게 꺾어버리는 초능력자를 보며 규남은 변하기 시작한다. 초능력자에게 조종 당하지 않겠다는, 그 힘(권력)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그 보이지 않는 권력을 이겨내려고 했던 것이다.


영화 초능력자


초능력자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벌어 놓은 돈을 너무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초능력자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앞만 보며 달려나가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무엇때문에 달려야 하는지 그는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잃은 채 그는 달린다.


그냥 살아 남고 싶다는 그 강한 욕망이 그를 이끌었던 것 뿐이다. 하지만 그는 초능력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인간성을 상실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타인이 불행해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이 영화 속의 초능력자다.


영화 초능력자

영화 속의 초능력자가 현실에 없을까? 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내일에 대한 희망을 팔아먹거나 악용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 그 권력의 지배 아래에 놓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닌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규남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규남은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다르게 취급 받았다. 좀 다른 사람이라 차별 받는다는 점에서는 초능력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초능력자보다 힘은 작았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선한 의도. 자신의 미약한 힘이나마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는 일에 썼다는 것이 초능력자와 다른 점이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그가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규남도 초인이지만) 어쩌면 진정한 초능력은 그런 것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 현대 사회는 개인 간의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고 사회는 성공의 대가로 사람에게 당신의 인간성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다. 규남처럼 착한 사람이, 성실하게 제 몫을 다 해내는 인간이 대접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 받고 잘 사는 사회가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재미있는 오락영화이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궁금하다면 한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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