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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Aug 07. 2017

북촌방향

떠나온 곳을 배회하는 자의 노래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 노래 중 대부분은 주로 서울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의 시각에서 주로 다뤄졌다. 최근 화제가 된 버스커버스커의 '서울 사람들'이라는 노래 역시 타지역에서 온 멤버들이 바라본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울 사람이 서울에 대해 이야기한 노래는 조규찬의 서울하늘이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서울을 노래하고 이야기한 것들은 대체로 외지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성준/유준상)은 '외지인 아닌 외지인'이다. 그는 한때 서울에 살았고, 네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영화를 공부한다는 영화학도들 조차 그의 얼굴을 모를 정도로 비주류에 속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서울은 그에게 고향인 동시에 추억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가 도피하듯 떠나온 곳이기도 하다.



그는 조용히 지내다 가려고 마음 먹지만 길 위에서 우연히 후배를 만나고, 혼자 술을 마시러 간 주점에서 그 후배의 제자 (그 후배는 대학에서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교수다)들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신다. (물론 주인공은 그들이 후배의 제자인 것은 모른다)


만취한 상태로 전에 사귀던 애인(아마도 불륜관계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 나오진 않는다)을 찾아가 잠자리까지 가지고 도망치듯 그 집을 나오는 주인공은 다음날 선배(영호/김상중)를 만나 정독 도서관 앞에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다. (고백도 하지 못한 채 끝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다정'이라는 한정식집에 가서 식사를 함께 한다. 전에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 배우도 그 자리에 동석했지만 좋은 말이 오고 가진 않는다. 껄끄러운 자리에서 식사를 마친 후 이들은 '소설'이라는 술집으로 향한다.



소설이라는 술집의 여주인이 자신이 전에 사귀던 애인과 너무나 닮은 것을 보고 놀라는 주인공은 눈 오는 날, 길 위에서 그녀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다. 그녀와 함께 만두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가 왜 서울에 갔는지, 왜 북촌을 돌아다녔는지, 그가 북촌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걷다 보니 북촌이었을 뿐이고, 그곳으로 계속 나가다 보니 첫사랑의 그림자를 따라 가고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는 결국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신이 떠나온 자리를 배회하는 인간이었을 따름이다. 벗어나 있지만,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 길 위를 걸었던 기억들이 있고, 그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있는 한.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길목마다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성준은 그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그림자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골목 어디를 뱅뱅 돌며 북촌에서 첫사랑을 닮은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 관계를 맺고 어떤 사이가 되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그는 또 까맣게 잊을 것이다.
 
그러나 눈 위에 흔적이 남겨지듯 그가 그 길을 걸었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자신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팬을 만나 사진을 찍힌다. 결국 그는 북촌에 또 다른 추억을 덧입히고 돌아온 것이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겹겹이 쌓인 추억으로 새로워질 뿐. 서울은 외지인들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오면서 만든 추억이 켜켜이 묻어 있는 공간, 고향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에서도 농촌에서 느낄법한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하지만 역시 그들은 함께이되 혼자였고, 고독했다. 섣불리 고독에 대해 안다고, 너의 외로움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자. 어깨를 부딪히더라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어도 쉬이 마음 섞지 못하는. 너와 나의 마음이 다르고, 함께일 수 없는 인생이라는 이 길고 긴 길은 결국 혼자만 걸을 수 있는, 또 걸어야 하는 길이니까.
 
그래서 나는 보람이 개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외로웠을지, 성준이 전에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제 몫의 고독을 육포처럼 씹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니까. 질겅질겅. 그래도  손 잡아줄 인간이 옆에 있다면 좀 낫긴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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