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처럼 시작된 사랑과 우정 사이
농담처럼 시작된 사랑. 오랫동안 지켜온 우정.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영화 하나와 앨리스의 주인공은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여학생들이다. 하나와 앨리스는 단짝 친구로 '하나'가 전철에서 우연히 보고 반하게 된 남자 미야모토 마사시에게 다가가기 전까지는 흔들림 없는 우정을 유지한다.
하나와 앨리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하나가 미야마토 마사시에게 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하나는 기절해 정신을 잃은 미야모토 마사시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해버리고, 미야모토는 그 말을 믿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거짓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급기야는 '앨리스'가 '미야마토 마사시'의 헤어진 여자 친구라는 거짓말에까지 이르게 된다.
앨리스는 친구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서, 아니 영문도 잘 모른 채 그녀를 위해 '미야마토 마사시'의 헤어진 여자 친구 역할을 기꺼이 떠맡는다. 그러다가 앨리스 역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미야마토 마사시에게 끌리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우정 외에 다른 무언가가 더 생기고 만 것이다. 각자 다른 사람을 좋아했더라면 어긋나지 않았을 우정은,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나타난 '미야모토 마사시'라는 남학생에 의해 깨어질 위기에 처한다.
앨리스는 미야모토 마사시를 좋아했지만, 하나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바닷가에서 하나에게 미야모토 마사시와 헤어지라고 소리치지만, 이내 농담으로 돌려버리고 말 정도로 앨리스는 하나와의 우정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사랑의 감정이 쉽게 식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앨리스 역시 하나 못지 않게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가슴 앓이를 한다.
어찌보면 두 사람에겐 '미야모토 마사시'에 대한 감정이 일종의 성장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와 앨리스는 동시에 같은 사람을 좋아하면서 더 성숙하게 되고 내적으로 더 성장하게 되니까 말이다.
사실 어릴 때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어쩌면 그것들을 찾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앨리스도, 하나도, 미야모토도 그랬던 것 같다.
미야모토는 앨리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하나에게 사랑보다는 두려웠던 감정이 더 컸기에 이미 지나간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앨리스에게 더 끌렸던 것일 것이다. 앨리스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하나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사실은 잘 몰랐던 거다.
앨리스 역시, 처음 시작은 '장난'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야모토 마사시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미야모토 마사시와 이별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오디션에 임하게 된다.
사실 앨리스는 그전까지는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긴 하지만 별다른 의욕은 없어 보였다. 사실 그런 일을 하기엔 수줍음 많고 재능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발레 외엔 딱히 눈에 띄게 잘하는 것도 없는 앨리스는 (게다가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이유도 알지 못하고, 간절하게 원하지도 않았던)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진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때론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하는 하나와 달리 앨리스는 매사에 늘 조심스럽고, 머뭇거리는 타입의 아이였다. 어쩌면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랜시간 동안 서로의 곁을 지키는 단짝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하나 역시, 미야모토 마사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미야마토 마사시가, 자신보다 앨리스에게 더 호감을 보이자 자신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거짓말이 아닌 진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을 것이다. 포기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겠지.
하나가, 학교 축제 기간에 공연을 하러 나가기 직전에 미야모토 마사시에게 힘들게 털어놓은 진실이, 바로 성장을 했다는 증거다. 두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도 보이는 하나와 앨리스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 헤매이고, 가슴 아파하면서 성장통을 겪고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고, 성숙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이르다고 생각되는 때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어, 아직 이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