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Aug 28. 2017

고지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실 전쟁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진 - 전쟁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은 '스펙터클한 영화'의 대명사 쯤으로 치부되기 쉬운 탓이다.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대체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음향 효과나 대규모 전투 씬에만 신경 쓴다. 거기에 인간의 모습은 담겨 있지 않다. 대신 거기에는 잘 만들어진 전쟁 영웅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은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지만, 영화로 소비되는 전쟁의 모습은 게임을 즐기듯 싸우고 이기는 모습이나 그것을 즐기는 행위 그 자체에서 그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했다. 전쟁은 오락으로 소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여타의 전쟁 영화와는 다른 시각에서, 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잘 만든 전쟁 영화였고,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 좋았다.
 
전쟁으로 무너져버린 개개인의 삶. 그들은 안개가 걷히지 않기를, 그래서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전쟁은 그 작은 바람마저도 무참히 짓밟아버리고 만다.
 
살고 싶다는 욕망은 본능적인 것이다. 이들이 싸운 것은 나라나 이념 때문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수혁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죽인 일영을 감쌌어도 아무도 수혁이나 일영을 욕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들 살고 싶어했으니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동료까지 죽이고도 살아남고자 했던 일영은 몰핀 주사를 놓으며 고통을 잊으려 한다. 그가 받았던 정신적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을 거다.) 영화의 막판에 등장한 12시간의 전투는 무의미함, 허무 그 자체였다.
 


보잘것 없는 삶이라 해도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는 그 강한 본능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본능이 살아 꿈틀거리는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슬플 수밖에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의미한 테러와, 전쟁이 사라지기를. 이제 그만 그 무의미한 - 싸움을 멈추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와 앨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