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Sep 20. 2017

쩨쩨한 로맨스

사랑도 계산이 되나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은 을보다 우위에 있다. 갑은 을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늘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쩨쩨한 로맨스에 등장하는 남녀 역시 갑을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갑을 관계는 갑이 을이되어버린 관계다.


유명 화가였던 아버지와 달리 그다지 잘 나가지 못하는 만화가인 남자(갑)는 거액의 상금이 달려 있는 성인 만화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리기 위해 스토리 작가(을)를 고용한다. 그의 만화는 너무 철학적이고 심오한 탓에 인기를 끌지 못했고.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주변 동료 만화가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넌 스토리 작가 없인 안돼"라는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그는 인생 한방을 노리며 스토리를 만들어줄 작가로 한 여성을 고용한다. 일적인 관계로 시작되는 두 남녀의 만남은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뀐 채 쉴 새 없이 삐걱댄다. 물론 을이 갑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갑에게 을이 필요하듯 을에게도 갑은 필요하다. 하지만 갑과 을의 관계에서 약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갑은 을이 꼭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어도 되고, 고용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쉽게 대체 인력을 찾을 수 있는 대신, 을은 갑을 떠나면 다른 갑을 찾아야 하고 그에게 고용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위치에 있는 것과 누군가에게 선택(고용)되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입장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갑을 관계는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영화는 갑을 관계가 어떻게 연인 관계로 변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주도권 싸움은 갑을 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지만, 연애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 갑과 을을 구분 짓는 것은 갑을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인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것.
 
그러나 관계의 열쇠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쥐고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에서 관계의 지속을 가능케 하고 그러한 노력을 더 많이 쏟아붓기 때문에 그것이 끝나는 순간, 관계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보면,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탄 배는 그러니, 더 많이 사랑하는 쪽에 달려 있는 것이다. A가 B를 더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B가 A를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끝나는 것이다. 제때 내게(마음에) 도착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질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일이니까.


그러나 연애는 갑과 을의 관계처럼 단순히 어떠한 목적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이 영화 속의 남녀는 처음엔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게 된다.
 
일적인 관계에서도 때때로 감정을 공유하는 일들이 생겨나지만, 연애에서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 알아가고, 그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러다가 문득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때, 그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나로 가득찼던 나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그 순간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 속에서 남자는 자신이 고용했던 여자에게 말한다.
 
"그림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아버지가 남긴 그림 한 점.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던 그 그림 한 점 때문에 남자는 만화가로서의,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내다버리고 성인 만화 공모전에 사활을 걸고 뛰어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림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그 여자를. 남자는 그 그림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어머니와 자신을 유일하게 연결해주고 있던 그 감정의 끈을, 그 작품을 그는 포기한다.


눈앞에 살아있는, 자신만을 기다리는 여자를 위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뭘까? 무엇이기에 이리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부족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랑을 받고 어른으로 성장하며,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이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