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소설 모던보이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영화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던 보이나 모던 걸은 근대적인 남성과 여성.
일제 강점기 때 개화된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말로 새로운 것, 유행에 민감하고, 물질적인 소비를 즐기는 이(신여성, 신남성)를 통칭하는 말로 쓰였다. 여자는 모던 걸, 남자는 모던 보이로 불렀는데 이들은 대다수가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인 경우가 많은데다 허영심이 많고 사치를 일삼는 경우가 많아서 서민들이나, 기성세대에겐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던보이 (해명/박해일)의 모습도 그리 다르진 않다. 해명은 친일파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어린 시절엔 일본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기도 했던 남자로 겉으로는 자신은 되는 일이 없는 편이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조선 총독부에서 일한다고 말하지만 남 부럽지 않은 안락한 일상에 푹 젖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식인인 체 하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으며 허세와 위선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해명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를 일삼으며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삶을 소비하던 그는 어느날 자주 가던 비밀 구락부에서 댄서로 등장한 로라(조난실/김혜수)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독립 투사로 해명을 적당히 이용해 도망치거나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리고, 그의 집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은 모두 훔쳐 달아난다.
그후 로라의 원래 이름이 조난실이며, 그녀가 비밀리에 활동하는 독립 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해명은 혼란에 빠진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그는 난생 처음 사랑하게 된 여자 때문에 독립 투사로 변모해가지만 - 그는 끝내 진정한 독립 투사는 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기엔 그는 너무 여리고 순수하며 동시에 위선적이고 겁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아는 난실은 그를 살리고 혼자 죽음으로써 그의 곁을 떠난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미있게 봤는데 친일파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런 것도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다. 친일파라고 하면 모두 미워하지만 - 결국은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임을 - 해명의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살고 싶다'고 내뱉는 난실의 말 한마디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표현하려다보니까 약간은 산만한 구성을 지니게 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영화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캐스팅에 대한 아쉬움이 약간은 개운치 못한 뒷맛으로 남는 영화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