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Sep 29. 2017

바깥은 여름

마음의 계절에 관한 이야기

1월, 연이은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반면 차창 너머 여름은 느긋했다.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김애란 _ '풍경의 쓸모', 156쪽 <바깥은 여름>)

이 책은 소설집이다. 이 책의 띠지에 '김애란 5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소설집에는 7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이 말하는 바가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7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바깥'이었기 때문이다. 안과 밖의 계절 차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입동 

나는 이 소설을 읽다가 좀 울었다. 첫번째 소설인 '입동'을 읽다가 눈물이 툭 흘러내렸다. 입동에는 젊은 부부가 등장한다. 대출을 끼고 장만한 아파트에서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사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날 후진하던 어린이집 차량에 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부는 아이를 잃게 되고 어린이집에서는 보험처리를 한다. 보험금을 받게 되었지만 부부는 그 돈에 손을 댈 수 없다. 아이 목숨 값과도 같은 것이니까.

억만금을 준대도 바꾸지 않을 아이가 사라진 댓가로 손에 쥐어진 돈이었으니까. 어린이집에서는 복분자 선물을 이 부부의 집에 잘못 보낸다. 다시 돌려줄 요량으로 한쪽에 치워둔 복분자를 주인공의 어머니가 뚜껑을 열다 벽지 가득 튀게 만든다.

부부는 도배를 하기로 하고, 아내는 도배를 하면서 남편에게 혼자 돈을 버느라 힘들지 않느냐며 "그 돈 헐자. 빚 갚아야지"라고 말한다. 그 말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내는 도배를 하던 중 아이가 벽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다 만 것을 발견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아내에게 채 다 쓰지 못하고 간 아이의 이름은 아이가 미처 다 살아보지 못한 인생으로 치환되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묘사가 꽤 사실적이어서 (다가와 등을 토닥토닥 하는) 김애란 작가가 기혼인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미혼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의 이런 생각에는 근거가 하나도 없고. 김애란 작가가 미혼이라면 아기들을 상당히 자세히 관찰한 것 같다. 세월호 사건도 언뜻 스쳐 지나갔고...생각보다 묵직한 주제의 소설들이 모여 있는 소설집 같다라는 인상을 첫번째로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받았다. 그리고 바깥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됐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말은, 안은 겨울이라는 뜻이었구나 알았다. "내가 체감하는 마음의 계절은 겨울인데 바깥은 여름"이라는 얘기로 읽혔다.

노찬성과 에반

 두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인데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할머니와 사는 노찬성이라는 아이가 떠돌이 개를 거둬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개는 이미 사람나이로 치면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견이었다. 노찬성이라는 아이는 이 개를 살뜰히 보살피지만 개는 나이가 너무 들어 몸이 아프다.


할머니가 일하는 휴게소 식당에서 밥을 먹는 대신 밥을 사 먹겠다고 한 후 받은 용돈을 아껴 어렵게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개가 병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년은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개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개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이를 속여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였고 에반이라고 이름 붙인 개를 위해 열심히 전단지를 돌린다. 개에게 고통 없는 마지막 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반 친구들이 다 갖고 있는 스마트폰이 없는 찬성에게 어느날 할머니가 액정에 금이 살짝 간 핸드폰을 가져다 준다.

어렵게 찾아간 동물병원이 상중이라 문을 닫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 대리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유심칩을 사느라 돈을 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핸드폰 액세서리를 사고, 그렇게 돈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찬성은 돈이 줄어들자 개를 안락사 시키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개와 함께 즐거운 날들을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개에게 줄 핫바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개를 찾지만 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찬성은 개를 찾으려고 휴게소 근처를 갔다가 주유소 근처에서 자루에 뭔가 들어 있고 피가 흘러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떤 개가 스스로 차에 뛰어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찬성은 그것이 에반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리고 찬성은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입밖에 내지 않는다.

건너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낙방하고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하는 남자와 그와 동거를 하고 있는 교통방송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에 방을 빼달라고 하는 집주인과 얘기를 나누던 중 남자친구가  보증금을 미리 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회를 사주겠다고 해서 나섰다가 횟집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 남자친구가 일을 한다고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그 돈으로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미뤄뒀던 이별을 한다.

침묵의 미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시되고 사라진 사람과 언어에 관한 이야기.

풍경의 쓸모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연히 곽교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집까지 태워다 준다고 해서 그의 차에 동승을 하게 되는데, 음주를 했던 그가 교통사고를 낸다. 사람을 친 것이다. 다행히 그가 친 여자아이가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는 그 사고를 주인공이 낸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평판과 앞으로의 승진시험에 이 일이 영향이 끼칠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그는 교수 임용을 기다리며 그에 응하고 은근히 곽교수로 인해 교수에 임용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가족 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해외여행 도중에도 그의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지도 교수로부터 그가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교수 임용을 반대한 사람이 곽교수라는 사실을 그의 지도 교수로부터 듣게 된다.   

가리는 손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주인공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이고,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피부색 때문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무리의 학생들이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과 시비가 붙어 그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사건을 목격했지만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무리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라도 집단에 속하고 싶은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혼혈 아이의 이야기였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남편과 사별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남편은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다 아이를 살리고 죽었다.  여자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병을 앓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해외에 나가고 그곳에 사는 이성 친구(남자사람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이 살리고 죽은 아이의 누나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에는 그 학생이 죽었다는 것, 몸이 불편해진 누나를 돌보며 살았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다른 아이를 살리려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그 편지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가끔 시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나 역시 가끔 시리와 대화를 나누는지라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서 소설 속에서 그녀가 시리에게 던진 질문을 나 역시 해보기도 했다. 시리는 소설과는 좀 다른 대답을 내놓았지만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대답은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 역시 바깥은 봄인데 마음의 계절이 겨울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다. 꽃 피는 그해 봄에 아버지를 잃었던 날,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이 슬프게 보였던 경험이 있다. 한동안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슬펐다. 오래전부터 아이를 봄에 낳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슬픈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정말 봄에 태어났다. 지금은 봄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바깥은 여름인데,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여운이 깊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간의 거리를 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