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Oct 14. 2017

이유

집과 함께 증발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이 작품은 사회파 추리물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으로 제120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사회파 추리물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실제 일어날 법한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실질적인 범죄를 폭로하는 추리 소설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은 추리 소설이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는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이 담겨 있다. 이 소설에는 일본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 '증발하는 사람들'도 등장하고 어떤 이유로든지 가족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했거나, 떠나게 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고급 아파트에서 살해 당하는 버티기꾼이 그들이다. 집을 잃게 된 사람과 집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다 나름대로 그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었고 이 소설은 그 이유를 파고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실제 이 사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을까 궁금해져서 구글링을 했었다. 구글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경찰 가장의 이야기도 만났고, 또 이것과는 상관 없지만 돈 때문에 부인을 살해한 국내 의사의 이야기도 읽었다.


그 중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 같은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 사건'이 있었다. 일본의 5대 미제 사건 중 하나라고 하는데 사건의 양상은 다르지만, (사실 미제 사건이기 때문에 밝혀진 것도 별로 없지만) 큰 틀에서 보면 지하세계에서 활동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인해 사건이 벌어진다는 측면에서 소재적인 부분에서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이들이 가족과 멀어지게 된 것은 가족의 무관심과 결핍감 때문이었다.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 나를 이해해주는 가족이라는 터전을 잃은 마음에 들어 찬 결핍이 나쁜 일에 빠져들게 만들고 망가뜨리고, 결국은 살인자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가정의 울타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보이지 않게 나를 지켜주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가족의 사랑과 지지일 것이다. 그것을 잃은 인간은 무엇에 기대게 될까? 그 공허한 마음을 물질로 채우기 위해 애쓰다 망가지고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가정불화나 실직 등 경제적인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일본 사회에서는 '증발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증발되는 사람들에 대한 날선 비판 의식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사회에서 해마다 그렇게 증발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꽤 많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싫다고, 상황이 나쁘게 되었다고 버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족은 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뿌리인 가족을 버리고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벗어나고 싶어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 가족이라고 누군가는 가족은 요요와 같다고도 말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내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것을 야스타카는 깨달았다.
이 '과거'는 경력이나 생활 이력 같은

표층적인 것이 아니다.
'피'의 연결이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잘라낸 인간은

거의 그림자나 다를 게 없다.
본체는 잘려버린 과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553쪽)
미야베 미유키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타샤의 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