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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Oct 26. 2017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먹고사니즘으로 빚어진 이야기

이 책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린 만화책 같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래픽 노블이 소설을 만화로 풀어낸 것이라면 이건 코믹 노블 같다고 느꼈다.  만화를 소설로 풀어낸 듯한.  저자의 유머감각이 빚어낸 세계일 거라 멋대로 상상하며 읽어내려 갔다. 물론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살짝 살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저자의 경험담인가?" 그만큼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든 생각이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 아, 허구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고 알게 됐다. 이 소설은 작가가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녹여낸 작품이라는 것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인데, 잘 다니던 논술 학원이 없어지는 바람에 논술 학원 강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사우나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게 된다. 주된 업무는 발목이 늘어난 양말로 회원님들이 흘린 물기를 재빠르게 제거하는 일이다. 이 때문인지 그의 상사는 족저근막염에 걸리기도 한다.


1퍼센트의 남자들이 드나든다는 멤버십 사우나에서 그는 있는 듯 없는 존재가 된다. 유령 같은 존재 말이다. 세상에 모든 을들이 (그는 이 소설 속에서 '을'도 아닌 '병'이지만) 그렇듯이 말이다.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는 마침내 탈출한다. 더는 있는 듯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먹고사니즘은 우리의 발목을 때때로 붙잡고 우린 그것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의식도 못한 사이에 스스로 있는 듯 없는 존재로 사는 것, 을의 역할에 충실하며 버티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사는 일의 고단함과 자신의 존재를 찾고 싶은 욕망의 줄타기 속에서 이 소설은 탄생된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다녔던 논술학원 원장이었던 조 씨를 다시 만난다. 그는 논술 학원을 말아먹고 다른 논술 학원에 취직해 잘나가고 있는 중이었고 그가 일하는 멤버십 피트니스 센터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그가 다니는 학원 원장과 학부모들이 이 멤버십 피트니스 센터의 주요 고객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를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만난 조 씨는 말한다.


어쩌다 네가 이렇게 됐니?


그 말에 그는 이렇게 응수한다.


이건 내가 아니라 그냥 일이라고요.


통쾌한 한마디였다.  이 문장을 읽기 전에 스피카의 멤버였던 한 여성이 녹즙 배달을 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난 이후라 더 그랬다.  그 기사의 제목에서는 한때는 아이돌 멤버였지만, 지금은 녹즙을 배달하는 사람이 됐다는 뉘앙스가 역력했다. 그래서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녹즙을 배달하는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런 우를 범한다. 그 사람이 하는 일로 그 사람을 규정해버리는 그런 일들 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았다.  일과 자신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선을 그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저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수상한 사우나 매니저, 알고 보니 쥐였지'였다고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사의 70%는 실제 피트니스 센터 회원이었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의 쥐가 된 것마냥 느껴져 초고 제목을 그렇게 정했었다고 한다. 이 제목은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었다가 출판사 관계자로 인해 지금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좀 더 가볍고, 천박하고, 덧없고 얄팍하지만 그러면서도 홀딱 벗은 상류층 남자들이 머무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가 바스러지는 순간을 응시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한 후 제 13회 세계 문학상에 응모해 수상하기도 했다.  


생계가 주는 버거움 속에서 허덕이기는 상류층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벌거벗은 몸뚱이로 피트니스 센터의 멤버십 회원이라는 자격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또한 그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상류층 남자들의 세계는 서민들의 세계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은밀한 시간을 엿본 독서였다. 설렁설렁 읽어내려갔지만 작가의 필명처럼 맵고도 끝맛을 아리게 하는 여운이 있는 생강 같은 소설이었다.  



우리의 앞날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물론 특별한 계획도 세우기 힘들었다.
나나 그녀나 모두
뼈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꿀렁거렸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쉽게
게임 오버되기 쉬운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그건 용기나 낙천, 열정 같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보험 없는 삶이지만
내가 사는 삶이니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213쪽,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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